결혼 전 남편을 두 번 울렸다. 두 번 다 내가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끝까지 아이를 안 갖겠다고 하면, 우리, 헤어지는 게 나을까?"
그 순간, 남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실시간으로 남의 눈물이 샘솟는 걸 태어나 처음 직관한 나는 당황해서 따라 울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가앤쿡에서 통곡의 시간을 가졌더랬지.
남편은 좀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다. 반대에 가깝다. 남편은 쿼카형 인간이다. 그러니까, 대체로 웃는 사람.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그러므로 인생은 살 만한 것이며, 따라서 단란한 가족을 꾸리는 게 일생의 목표인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 이유로 일찍이 품절되지 못했고 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6살이나 어린, 세상을 비관하는, 새 생명을 내놓기에는 세상이 마음에 안 드는, '비혼 나쁘지 않지' '아이는 안 낳고 싶어' 생각하는 나.
그러므로 내가 남편에게 저 질문을 던진 건 나름의 배려였다. '이 아저씨 나이도 잡술 만큼 잡쉈는데, 2세 계획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하면 놔주는 게 맞지 않나' 하는 고심 끝에 한 말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질문을 처음 한 날은 우리가 서울시 예비부부학교를 다녀온 날이었을 거다. 집에 처음 인사 온 남편이 마음에 들었던지(순진하게도 나는 그냥 명절 인사라는 남편의 말을 믿었다. 나 빼고 다 결혼 준비 과정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불쑥 서울시 예비부부학교란 것이 있으니 들으며 서로의 인생관을 진지하게 탐색해보라고 권했다. 과연 학교는 위대한 것. 수업 중 마련된 대화 시간에서 우리의 결정적 인생관 차이는 2세 계획에 있었다는 걸 마주하게 됐다.
그러나 남편은 비겁하게도 눈물로 두 번의 질문을 무마했고, 나는 사랑하는 남자의 눈물에 홀렸다. 결국 우리는 이토록 중대한 문제를 미뤄둔 채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허니문 베이비도 좋다!"는 시부모님 앞에서 "아직 저도 덜 커서요. 저부터 좀 자랄게요. 하하" 나 역시 비겁하게 무마하며 지냈다.
그렇게 얼렁뚱땅 보낸 결혼생활 약 3년. 내 마음이 변했다. 참 나. 남편이 끝없는 햇볕정책으로 나를 홀린 까닭인지, 인류 유전자에 대대로 각인된 종족보존의 본능이 내 안에서 깨어난 것인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사실 가장 솔직한 내 심경은 이런 문장에 가깝다. '이런 거(남편)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을 복제/백업하겠다는 나의 선언에 남편은 또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고, 우리 부부는 산전검사라는 것을 나란히 받고 왔다. (맨날 예산 퍼붓고 효과 없다고 욕했는데 생각보다 임신출산 관련해 제법 유용한 정책이 여럿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보건소 무료 산전검사도 그 중 하나.)
이 정도면 남편을 국회로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저출생, 인구절벽 걱정하는 뉴스가 날마다 들려오는 대한민국. 남편은 비혼주의를 외치던 나를 결혼하고 싶도록, '내 생에 출산은 없다'고 다짐하던 나를 2세를 꿈꾸도록 만들었다. 나의 세계관을 뒤흔든 쿼카. 사실, 쿼카는 무서운 동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