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아기'라고 아시나요
2세 계획 물으면 안 되는 이유
"앞으로 2세 계획이 어떻게 돼?"
신혼여행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자마자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일주일 사이에 내가 남들 눈에 사람이 아니라 자궁으로 보이기 시작한 걸까? 심지어 결혼도 안 한 사람들도 물어보더라.
처음에는 열받았다. 나한테 애 맡겨놨나? 낳기만 하면 당신이 키워주나 보지? 남편에게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더욱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한창 화가 많을 30대다.
결혼 2년차쯤부터는 요령이 생겼다. 열도 별로 안 받았다. "아, 명절인가요?" 하고 웃으며 상대에게 가볍게 면박을 준 뒤 말을 돌렸다. "아이 생기면 말씀드릴게요. 맛있고 비싼 거 사주세요!"
2세를 갖겠다고 본격 결심한 뒤부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세 계획이 어떻게 되냐고요? 아기 언제쯤 갖냐고요? 이젠 정말 나도 모른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한국에 잘 없다는 것이다.) 인간 여성의 몸에는 배란기라는 게 있다. 한 달에 1주일쯤. 이 기간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과 착상이라는 불가해한 과정에 성공해 임신 징후가 나타나기까지는 약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개인차가 크다. 월경주기가 사람마다 차이를 보이듯이.
그러므로 이번달 초 내가 남편 백업 작업에 돌입했어도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는지는 약 한 달간 나도 모른다. 자꾸 물어보셔도 진짜 모른다. 나야말로 알고 싶다. 이 맥주캔을 따도 되는지... 어쩌면 2세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이전보다도 모른다. 그때는 확실하게 아니었거든.
'슈뢰딩거의 아기' 상태를 겪으면서 알게 됐다. 2세 계획에 대한 질문이 난임부부나 딩크(Double Income No Kids·경제적으로 안정돼있으나 가치관에 따라 2세를 갖지 않는 부부)족에게만 무례한 게 아니란 걸. 이건 임신을 준비 중인 부부에게도 답하기 퍽 난감한 질문인 것이다. 회식자리에서 2세 계획을 묻는 직장 상사에게 이렇게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희 부부가 어제 밤에 합방을 하긴 했는데 3주쯤 뒤에 임신테스트기 해보고 말씀드릴게요."
게다가 상대도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닐 것이다. 명절날 고등학생인 조카를 오랜만에 만나 할 말이 없어서 "공부 잘 하고 있지?" 묻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질문이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그 질문을 맞닥뜨리는 빈도와 난도가 높다. 그러니 할 말이 없으면 우리는 어제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이야기나 하는 게 적당하겠다. 서로 궁금한 것도 할 말도 없는 사이라면 2세 계획은 더더욱 공유할 사이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