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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 Jan 29. 2024

임신했고, 아직은 남편도 모른다

이게 되네?

나만 안다. 온 지구, 아니 온 우주에서 이 비밀은.


새벽, 자다 깨서 번째 화장실을 다녀왔다. 전날 밤에 맥주를 마시고 잔 것도 아닌데 유난스러운 방광이었다. 몸 상태가 뭔가 평소와 달랐다. 방광염인가? 의심스러워서 체온계로 재보니 36.9도. 미열이 있었다. 역시 염증인가? 저녁에 업무 술자리가 약속돼있었는데 잠을 설쳐서인지 벌써부터 피곤했다.


그때 불현듯 화장실 선반에 둔 임신테스트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혹시?


임신테스트기 사용설명서에는 소변을 묻힌 뒤 10분을 기다려 결과를 판독하라고 적혀 있다. 판독이 필요 없었다. 명백한 두 줄이었다. 와, 이게 되네? 코로나19 걸려 코를 쑤시고 자가진단키트를 해본 이후 태어나 처음 본 붉은 선 두 줄이었다. 결혼 전, 아니, 2세 계획을 세우기 전인 신혼때까지만 해도 이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뜰까봐 걱정하며 지냈다. 한 줄을 보려고 사놓은 테스트기였다. 어쩌다 몸 상태가 이상하면 테스트기를 해보고, 안심하고, 이런 시간을 겪을 필요 없는 남편의 등짝을 때리며 지냈다. 이제는 달랐다. 남편도 잠든 새벽 5시, 고요한 화장실에서 혼자 비밀이 생겼다.


비밀이란 설레고도 두려운 것이다. 당분간 이 비밀을 나만 알고 싶은 마음과 온 세상에 이 소식을 널리 알리고 싶은 상반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드라마에선 임신테스트기 줄이면 순식간에 엄마가 되던데. 나는 이 임신테스트기를 언제 남편에게 보여줘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보여줄까, 말까?


혹은, 임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새벽 5시 20분, 화장실에 혼자 서서 네이버에 '임신테스트기 두 줄' '임신 확인 시기' 같은 것을 검색했다. 임신은 변수의 연속이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다고 해도 자궁외임신이거나 착상이 제대로 됐다고 해도 아기집을 확인할 수 없거나 심장이 뛰는 걸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른바 유산. 불과 20분 만에 겁쟁이 예비엄마가 됐다. 모성애라기엔 이르고 (20분 됐다.) 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온 30대 여성 특유의 우직한 책임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확실한 건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고, 몇 주 뒤에 아기집을 보고, 또 몇 주 뒤에 심장 소리를 듣고… 아니, 그래도 모른단다. 임신 12주는 돼야 '안정기'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제야 안정적으로 임산부라는 말이겠다. 12주면 무려 3개월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왜 학교에서 안 알려주지?


어쩌면 테스트기 자체의 오류일 수도 있다. 새벽 5시 45분. 옷방에서 임신테스트기를 하나 새로 꺼내왔다. 그리고 여지 없이 두 줄.


임신일까? 아직은 나도 모른다. 우주에서 이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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