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밍아웃이란 말, 나만 이상한가요?
생각이 많은 임산부
"일어나봐. 이제 어떡할 거야."
낭만적인 말을 준비할 겨를은 없었다. 코골며 자고 있는 남편부터 깨웠다. 새벽 6시. 자다가 두 줄짜리 임신테스트기를 받아든 남편은 거의 뺨을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그토록 아기를 갖자며 조를 때는 언제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테스트기와 나를 몇 번 번갈아 쳐다본 뒤에야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너도 좀 겁먹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임신테스트기 두 줄. 당분간 나만 아는 채로 남편을 조금 골려줄까, 낭만적인 이벤트로 알릴까, 하다가 남편에게 이실직고하고 같이 산부인과병원부터 가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 불확실성을 나 혼자 견딜 자신이 없었다.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곧장 새벽녘 한 시간동안 내가 화장실에서 겪은 일들과 감정을 남편에게 브리핑했다. 임신 여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고, 당신이 쿨쿨 자고 있는 동안에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혼자 겪어내고 탐구해야 했노라고. 오직 혼자서. 그러니 지금부터 뭐라도 해보라고!
남편은 기뻐하다가, 나를 안아줬다가, 혼자 뭘 막 검색해보다가, 이미 내가 두어시간 전에 찾아낸 정보를 내게 들려줬다가, 옷을 꿰어 입고 산부인과에 갈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병원 진료 시작 시간인 9시가 되기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내 생애 산부인과 오픈런을 하게 될 줄이야.
"임신테스트기를 해봤는데 두 줄이라서요."
"선명했어요?"
"네.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며) 딱 봐도 두 줄이었어요."
"아직 선명하진 않은 거 같은데?"
격앙된 나와 달리 의사는 심드렁했다. 임신테스트기보다 정확한 건 피를 뽑아 인간 융모성 생식선자극 호르몬(hCG) 수치를 확인해보는 방법이라고 했다. 진료접수 서류에 마지막 월경 시작일을 적어낸 걸 보더니 아직 아기집이 보일 시기는 아니라 피검사를 먼저 해보거나, 몇 주 뒤에 다시 병원에 와서 아기집을 보라고 권했다. 선생님은 지금 제가 몇 주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물론 그렇게 묻지는 못 했다. 얌전히 피를 뽑고 한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병원 1층 스타벅스에 도착해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반반차를 썼어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뭔가를 먹기로 했다. 오픈런한 덕분인지, 1시간은커녕 샌드위치를 다 먹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수치가 220이 넘네요. 임신으로 보입니다."
다시 한 번 환호와 포옹의 시간을 가진 뒤 우리 부부는 빠르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다. '양가에는 언제 알릴 것인가.' 이른바 '임밍아웃' 시기를 정해야 했다.
그런데 나를 망설이게 하는 건 임밍아웃 시기뿐이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임밍아웃이란 단어가 영 마음에 안 든다. 누군가는 내가 나로 살기 위해 인생을 걸고 성 정체성을 고백한다. 이걸 커밍아웃이라고 부른다. 임신 사실을 알리는, 대체로 모두가 축하해주는 수월한 과정에 이런 엄중한 단어를 장난처럼 가져다 붙이는 건 아무래도 도둑질 같다. 그래서 '임밍아웃 파티'라거나 '임밍아웃 복권(동전으로 긁으면 당첨금액 대신 임신 사실을 알리는 문구가 있다. 쿠팡에도 판다. 별 게 다 있다.)' 같은 것들에 지레 거부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직 안정기 전이라 조심스럽기도 했다.
또 하나의 관문은 직장에 알리는 것이다. 이건 가족과 달리 100% 축하받을 수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까다로운 일이다. 직장에서 누군가의 잦은 외출이나 휴직은 다른 누군가의 업무 부담이 더해진다는 걸 뜻하므로. 상식적인 나의 동료들은 웃으며 축하 인사부터 건넬 테지만. 세상에는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임신 사실, 언제, 어떻게, 누구한테까지 알릴 것인가? 걱정 많은 예비부모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아주 사소하고 귀여운 수준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