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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 Jan 29. 2024

[프롤로그] "어떻게 애 낳을 생각을 했어?"

애 낳는 게 유난인 세상

"애 생각은 없어?" "아이는 왜 안 가져?"


결혼 4년차. 이런 질문은 이제 별 타격감도 없었다. 결혼 초에는 '내 자궁이 공공재냐' 몸을 떨며 분노했지만. 나중에는 "그러게요. 왜 저는 애를 안 갖고 있을까요?" 반문했다. 아직 '딩크(Double Income No Kid)족'으로 마음을 굳힌 것도 아니었고, 나는 30대 초반으로 생물학적 노산을 걱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대입원서를 쓰기 전처럼, 입사 준비를 할 때처럼, 부모가 되는 일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해왔다.


그치만 내가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애 낳을 생각을 했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명 시대. 내가 애 낳을 결심을 한 것도 스스로 미스터리지만, 이런 내 결정에 호기심을 표하는 사람들도 내 예상밖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이제는 애 낳는 일이 유난스러운 일이 된 세상인 것이다.


임신을 한다는 건 (아닌 경우도 있지만) '애 낳을 결심'을 하는 일이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게 '남는 장사'였던 농경사회와 지금은 다르다. 아이는 사치재에 가깝다. 장류진의 소설 '도움의 손길'에는 아이를 그랜드 피아노에 비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 그랜드 피아노가 거실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고 패브릭 소파와 소파스툴, 원목 거실장과 몬스테라 화분은 둘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거실을 통해 부엌으로 가려면 한가운데로 가로지르지 못하고 발뒤꿈치를 들고 피아노의 뒷면과 벽 사이로 겨우 지나가거나, 기어서 피아노 밑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비단 경제적 이유뿐이 아니다. 매일이 불안했던 20대를 겨우 통과했다. 입학, 졸업, 취업, 결혼…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 30대의 나는 현재 누리고 있는 예측가능한 행복들이 소중했다. 지금의 내가 썩 마음에 들었다. 이 상태를 포기하고 예측불가능한 행복의 (행복이겠지…) 세계로 돌진하는 건 너무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구와 인간은 병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자꾸 나빠지는 것 같은데, 이런 세상에 또 다른 생명을 내놓아도 되는 걸까? 태어날지 말지 스스로 고를 수도 없는 새 생명을? 생각이 많아지는 밤에 나는 가수 이랑의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을 흥얼거렸다. "젊은 친구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하네. 자네 이곳에서 고작해야 백 년이나 살까. 세이프 섹스를 하고 새 생명을 내보내지 말게…"


그럼에도 "어떻게 애 낳을 생각을 할 거야?" 이런 질문을 스스로 수없이 던진 끝에, 나는 아이를 갖기로 했다. 그리고 현재 임신 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스스로도 미스터리한 애 낳을 결심에 대해 틈틈이 써보려고 한다. 문득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스스로 놀랄 때도 있지만. 그 마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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