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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 Apr 16. 2024

엄마가 그럴 줄이야

자연분만 vs. 제왕절개

엄마가 내게 이럴 줄은 몰랐다. 드라마 '며느라기'에 나오는, 지독한 시어머니 얘기인 줄만 알았다. 우리 엄마가 '자연분만무새'(자연분만+앵무새)일 줄이야…


막달이 다가오며 분만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왕 할 거야?" 이런 질문은 임신 중기, 임신 사실을 갓 알릴 때부터 지겹도록 받았는데,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아기가 정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막달까지 머리가 아래를 향하지 않는 역아일 수도 있고, 자연분만을 계획했다가 아기가 힘들어 해서 응급 제왕절개 수술로 넘어갔다는 경우도 종종 들었다.


흔히 제왕절개를 쉬운 길 취급하고 '자분심(자연분만 자부심)'이라는 말까지 있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긴, 사람의 생살을 가르는데 쉬운 일일 리가… 제왕절개를 위해서는 7~8개층의 복벽을 절개한다. 평균 출혈량도 제왕절개가 자연분만의 2배 수준이다. 평생 흉터가 남는다. 수술 후에는 유착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수술 후 처음 몸을 일으킬 때 "온몸의 장기가 쏟아지는 기분" "뱃속이 불타는 느낌"이라고들 한다) 그런다고 유착이 안 된다는 보장은 없다. 몇십 년 전에 제왕절개를 한 산모가 아직도 날이 궂으면 상처부위가 아프다는 말을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제왕절개가 흔한 나라다. 지난해 제왕절개 분만율(전체 분만 건수 대비 제왕절개 분만 건수)은 61.7%로 절반을 훨씬 웃돌았다. 고령출산 증가, 건강보험을 통한 비용부담 완화, 휴직 등을 위한 계획출산 수요, 의료사고를 피하고 싶은 의료진의 권유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물론 진통에 대한 공포도 큰 이유일 텐데, 가끔 이걸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이가 없다. 피할 수 있는 아픔은 최대한 피하는 게 맞고, 말했듯이 제왕절개라고 아예 안 아픈 게 아니다.


https://naver.me/xGmdgjBG


자연분만이라고 후유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 요실금, 변실금(!)에 회음부 열상(찢어진다는 뜻이다…) 등 갖가지 흔적을 산모에게 남긴다고 했다. 이 과정은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아서(의료진의 적극 개입 없이 자연 상태에 놔두면 큰일난다), 최근에는 자연분만 대신 질식분만이라는 용어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런데 고심하는 내게 엄마는 노골적으로 자연분만을 권했다. 그것도 아기가 엄마의 산도를 통과하면서 유익균을 묻힐 수 있다는 이른바 '유산균 샤워' 혹은 '미생물 샤워'를 근거로 들면서. 엄마, 유산균은 약국에서 사다 먹이면 되잖아…


해본 사람이 더하다더니. 진통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엄마의 관심 밖이었다. 엄마의 최애는 벌써 딸이 아니라 태어나지도 않은 손녀가 돼버린 걸까! 당신은 나를 낳다가 진통에 치열까지 틀어졌으면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배신감에 치를 떠는 스스로를 어이없어 하면서(지금 누가 누굴 질투하는 걸까), 이런 애새끼 마인드로 아기 엄마가 되는 게 맞는 걸까 의심하며, 엄마를 향해 씩씩 거렸다. 그제야 엄마는 "제왕절개도 개복수술이고 마취를 하므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자연분만이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아는 엄마는 늘 쿨했다. 소위 전통적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딸에게 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했다. 가정 수업 숙제로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어휴, 보기만 해도 피곤하다. 나중에 살림 잘 하는 남편 만나면 돼. 대충 하고 나가 놀아!" 하고 말하곤 했다. 그게 삯바느질로 네 아이를 먹이고 입힌 자신의 어머니와 어린시절 가난에 대한 엄마의 방어기제였다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성인권 시민단체에서 일했고, 대학생 딸내미가 혼자 전국 기차여행을 다니고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도 '위험하다'며 말리는 법이 없었다. 내가 결혼한 뒤에도 자녀 계획에 대해 입을 대지 않았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이제 안다.


임신을 하고 나서 엄마의 너무 전형적이라서 낯선 얼굴을 본다. 전화하다 산책 중이라고만 말해도 "몸조심해라"고 전전긍긍하는 엄마. 할머니가 된 엄마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38주차에 뱃속 아기는 벌써 3.5kg에 육박한다고 한다. 너, 뱃속이 제법 마음에 드는구나? 잘 먹고 잘 커줘 고맙지만 이대로면 분만예정일에는 4kg가 될 기세. 병원에서는 예정일보다 조금 앞서 유도분만을 할 건지, 제왕절개를 할 건지 내게 결정하라고 했다. 남편은 전적으로 내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고(역시 똑똑하다. 어느쪽을 권했다가 나중에 내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겠어…) 병원 복도 의자에 앉은 나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내 신체의 안녕과 타인의 탄생을 건 결정이라니. 이런 건 해본 적이 없다.


결국 엄마찬스를 썼다. "엄마, 오늘 유도분만이랑 제왕절개 중에 택하라는데 어떡하지?" 내 카톡에 엄마의 답장은 뜻밖에 단호했다. "네 컨디션 생각해서 결정하자" 이러기야? 막상 결정할 시간이 되자 엄마는 예비 할머니에서 내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 아가가  생명 탄생 준비하느라 애쓰네" 나는 다시 엄마의 아가가 됐다.


그러나 진짜 복병은 나였다. 수술이 무서워진 나. 개복수술을 평생 겪어본 적 없고 수면마취도 해본 적 없는 나. 무통주사의 기적을 기대하는 나. 아기를 낳자마자 저녁을 먹고 싶은 나(제왕절개는 수술이기 때문에 일정기간 금식을 한다). 그리고 자연분만 아이가 더 건강하다는 '카더라'에 쿨하지 못한 나. 내가 이럴 줄이야. 내가 귀 얇은 엄마일 줄이야. 결국 유도분만을 시도해보고(그 전에 진통이 오도록 운동을 열심히 하고) 무리다 싶으면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결정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를. 며칠 뒤의 나와 아기에게 행운을 빈다. 제발요.



*아기 건강하게 낳고 오겠습니다! 당분간 연재는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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