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의 두 남자가 거리를 서성거린다.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한쪽이 먼저 입을 뗀다. "혹시, 당근…?" 쇼핑백에 포장된 물건과 천원짜리 몇 장을 교환한 뒤 물건을 받아든 쪽에서 묻는다. "근데 이거 뭐예요?" 돈을 건네받은 남자가 답한다. "몰라요, 저도."
이런 유구한 '당근 유우머'가 남 일이 아니다. 임신한 뒤로 나는 동네 기반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의 단골손님, 남편은 당근 배달부가 됐다.
육아용품은 특성상 사용 주기가 아주 짧고, 애지중지 사용하고, 그런데 새 상품은 비싸다. 당근 거래에 최적화된 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부동산 얘기가 임신-우울ver.이라면 육아용품은 임신-희망ver.이다. 당근 덕이다.
아기를 가진 뒤로 당근 매너 온도가 달궈지는 중이다. 육아용품을 마련하면서 거래도 열심이고, 연락도 열심이라서. '바운서' '기저귀갈이대'… 키워드 알림도 등록해놨다. 깨끗하고 저렴한 물건이나 나눔은 잠깐 한눈 팔면 '예약중' 상태가 돼버리기 때문에, 남편과 사냥하듯 매섭게 당근을 지켜본다. 요새 우리 부부의 당근 사냥이 어느 정도로 민첩하냐면, 지난번에 바구니 카시트(신생아용 카시트)의 경우 연락했더니 예약중이래서 실망했는데 그 예약자는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나름의 역할 분담도 이뤄졌다. 휴직에 들어온 나와 달리 남편은 근무 중이기 때문에, 보통은 내가 연락책을 맡고, 배가 불러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는 나 대신 남편이 물건을 공수해온다. (분하게도 바구니 카시트는 내가 한 발 늦었다만.)
당근으로 처음 구입한 아기 용품은 딸랑이였다. (여기서부터 초짜 냄새가 난다. 딸랑이는 선물이 많이 들어오고 옷에 사은품으로 달려오는 경우도 많아서 굳이 살 필요가 없다.) 선물받은 뒤 포장도 뜯지 않았다는 아기 딸랑이 세트를 만원에 사오는 길에 얼마나 설렜던지. 임신 중기, 아기 용품을 처음 마련한다는 내 말에 판매자는 모유 수유를 위한 준비물들이 남아돈다며 공짜로 나눠주기도 했다. "이건 있으세요?" "이건 준비하셨어요?" 하면서. 그때는 어디 쓰는 물건인 줄도 몰랐는데 지금 보니 소위 말하는 '출산 필수템'이었다.
안방에 놓인 원목 아기침대도 당근으로 구한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판매자 집 문앞에 물건을 내놓고 가져가도록 하는 이른바 '문고리 거래'였다. 육아용품을 파는 쪽은 대개 우리보다 1년가량 앞선 육아 선배들이다. 돌 단계의 육아용품으로 넘어가기 위해 이전 단계의 물건들을 비우는 중인. 그들의 판매글에는 "아기를 키우는 중이라 답장이 늦을 수 있어요." "육아 중이라 문고리 거래 원해요." 혹은 "육아 중이라 일일이 당근 거래를 할 틈도 없네요. 혹시 추가로 필요한 물품 있으면 말씀주세요." 이런 글이 붙어 있다. 아기침대도 그렇게 판매자 얼굴 한 번 못 보고 업어왔다. 범퍼쿠션에 묻어있는 달큰한 아기 냄새를 통해 그 집 아기의 건강을 짐작하고 바랄 뿐.
아기침대를 당근으로 사면서 내가 확인한 건 판매자의 얼굴이 아니라 남편의 얼굴이었다. 남편은 그날도 충실하게 당근 배달부 역할을 했다. 페미니즘 모임에 놀러간 나와 뱃속의 아기(남편에게 조금 미안할 때는 이런 화법을 사용한다. "아기랑 나랑 다녀올게!")를 대신해 원목침대를 날랐다. 육아로 바쁜 판매자가 분해를 해놓지 못한 아기침대를 낯선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일이 분해했다고 한다. 그렇게 날라온 원목침대를 거실에서 하나하나 물티슈로 닦고, 조립해 안방에 배치하는 남편의 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아기를 기다리는 남편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위로를 받는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아빠는 다정한 양육자는 아니었다. IMF를 통과하면서 생애의 풍파를 감당하기 벅차보였고, 그 자신도 '경상도 군인집안 출신'이라는 설명에 딱 들어맞는 살벌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두 딸을 데리고 전국으로 여행을 다니고 제철 음식을 챙겨먹이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사랑을 적절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엄하고, 예측불가능하게 성을 내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 아빠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저렇게 아기침대를 닦고 있었을까? 육아용품을 사다 나르며 나를 기다렸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내 안의 어린 내가 조금 안온한 기분이 든다.
"네가 세상의 빛을 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출산을 할 때까지 건강하고. 엄마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구나." 지난달 내 생일에 아빠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눈을 의심했다. 아빠랑 나는 이런 문자를 주고 받을 다감한 사이가 아니잖아요… 화면을 위로 올려 과거 문자들을 보니 짤막한 용건과 "응"과 "네"의 향연이다. 아빠도 내 아기를 기다리면서 나의 아기 시절을 떠올리는 걸까? 미숙한 아빠였던 자신을 떠올렸을까? 아빠는 평소 가족 누구도 손도 못 대게 하는 자신의 LP 컬렉션에서 동요 LP를 찾아 내게 선물했다. 내가 태어난 해에 제작된 LP에서는 조갑경, 이문세, 노영심의 풋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요즘은 아침마다 그걸 듣는다.
오늘은 변진섭이 부르는 '종이접기'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혹여나 세월이 지나고 삶이 팍팍해서 남편이 무감하고 불성실한 양육자가 된 순간에도, 아기에게 네가 얼마나 극진한 아빠의 사랑을 받았는지 내가 증언해줄 수 있을 거라고. 네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변하게 했는지 말해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