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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 Apr 08. 2024

노키즈존은 불매합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가 됐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따로 없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밈으로 유행했던 "엄마, 내가 갑자기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하는 질문은 내게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예정된 미래다. 나는 임산부이고, 인터넷을 떠도는 '맘충'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가야, 사람들이 나더러 벌레라고 하면 어떡하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데, 실수라도 하는 순간 벌레로 불린다.


"출산휴가 기간, 애 낳기 전에 뭐해야 해요?" 이런 질문에 선배 엄마들은 입을 모아 소위 '핫플레이스'에 놀러가라는 조언을 했다. 아이를 낳고 나면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런 곳에 가면 맘충 소리 듣거든" 그런 자조적 농담과 함께.


요즘 분위기 좋고 '힙한' 카페나 음식점은 웬만하면 '노 키즈 존'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분위기가 좋다는 말은 조용한 실내에 잔잔한 플레이리스트가 흐른다는 뜻이고 힙하다는 건 아이가 망가뜨릴 만한 요소가 곳곳에 진열돼있다는 뜻일 테니까. 물론 어른도 소란을 피울 수 있고 가게를 망칠 수 있지만.


노 키즈 존 얘기가 나오면 '맘충'이란 단어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맘충들이 애들을 제대로 간수를 안 해서 그렇지" "맘충들 때문에 어쩔 수 없지" 같은. 엄마와 벌레를 합친 끔찍한 단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번 놀라운데, 사회의 규범을 이제 막 배워가는 한 아이에 대한 돌봄과 훈육의 책임이 오로지 엄마 한 사람에게 무게 지워진다는 사실 역시 끔찍하긴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이기적이라 하고, 낳으면 맘충이 된다.


누구나 아이였던 시절이 있고, 아이는 사람들 속에 있어봐야 사람들 사이의 예절을 익힐 수 있을 텐데, 그 기회를 앗아가놓고 '왜 애를 제대로 안 가르쳤느냐'고 다그친다. '그 애는 틀림 없이 시끄럽고 가게를 지저분하게 만들 테니 가게에 들일 수 없다'고 일단 배척한다.


짐짓 점잖은 척하는 쪽에서는 '일부' 얘기라고들 한다. 일부 맘충 때문에 전체 엄마들이 욕을 먹는다고. 그러면 모든 집단에는 '일부' 진상이 있을 텐데 엄마와 어린아이 손님만 표적이 되는 이유를 진짜 모르냐고 되묻고 싶어진다. 사실 그 답은 간단한 것이다. 외출이 쉽지 않은 그 시기 엄마와 어린아이 손님은 어차피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수니까 안 받아도 장사에 크게 지장 없는 손님. 매너니 공중도덕, 가정교육 같은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봤자 결국 노 키즈 존 가게들이 선언하는 건 그것이다. 출퇴근 시간 직장인 손님 '일부'가 아무리 진상을 부린다 한들 '노 직장인 존'을 선언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카페는 없을 것이다.


그래, 공공기관도 아니고 영리 목적 가게인데 주인 마음이지! 모든 직업인에게는 직업윤리라는 게 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협력해야 할 몫이 있다는 걸 과감하게 포기하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소비자로서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방법뿐이다. 저도 노 키즈 존은 사절입니다.


아이를 가진 뒤에 '노 키즈 존' 글자가 붙은 곳엔 가지 않는다. 미래의 나와 아이를 환대하지 않곳에는 역시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정신승리처럼 보인다면 오산이다. 임산부가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지. 오늘도 노 키즈 존이라 붙은 동네 카페를 지나면서 '당신, 아주 큰손을 놓쳤다'고 중얼거린다. 가게마다 사정이 있고 가게 주인도 노 키즈 존을 선언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 곳에는 절대 가지 않는 것도 손님 마음이다. 좀 유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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