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거래 감시 운동의 시작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이 쓴 소견서를 보거나 감옥에서 쓴 편지를 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세상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 비장한 모습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무척 부끄럽기 때문이다. 감옥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마주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신영복은 못 되어도 그래도 바깥의 사람들에게 괜스레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을 떨치기 힘든 것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도 그랬다. 힘들다는 말을 할 때조차도 나는 대단한 성찰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편지를 썼다. 친구들은 내 편지를 보고선 《야생초 편치》를 쓴 황대권 선생님 같은 사상가가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였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가장 부끄러운 내 감정들은 꼭꼭 숨겼다.
출소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감옥 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내가 출소했을 때, 전쟁없는세상의 친구들은 한참 무기 체계를 공부하고 있었다. 나 없는 곳에서 나만 빼고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서운했다. 누구 한 명이 빠진다고 멈춰버리는 조직은 건강한 조직이 아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나의 출소를 크게 환영하며 당연하게도 앞으로 활동을 함께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머리로는 서운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수백 번도 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병역거부로 구속된 2006년,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은 유럽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단체로 참여했다. 앞의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은 남성 병역거부자들만 주목받기 쉬운 병역거부 운동의 태생적인 한계점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병역거부 운동 말고 다른 이슈로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을 확장하려는 중이었다. 그러니 다른 나라의 평화운동이 어떤 이슈로 캠페인을 하는지 보고 듣는 기회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그 회의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전쟁없는세상의 새로운 캠페인으로 낙점한 것이 바로 전쟁 무기를 만들고 판매하는 기업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었다.
그때까지 ‘전쟁수혜자WarProfiteer’는 한국사회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전쟁의 주요 행위자는 국가, 특히 군대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선전포고를 하는 것은 각 국의 정치인들이고,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군인들이었다. 전쟁에서 기업의 역할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이다. 군인이 수행하는 건 전투일 뿐이고, 군인들이 전투를 하기 위해 나라의 모든 이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특히 기업들은 군인들이 전투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고 운송함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파병의 대가로 미군이 전쟁 수행에 필요한 각종 사업을 한국 기업들이 입찰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재벌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대표적이지만, 이러한 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는 ‘군산복합체’라는 말이었다. 군산복합체는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퇴임 연설에서 군비경쟁의 가속화를 경고하면서 군부와 연결되어 전쟁으로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을 원하는 방위산업체들을 ‘군산복합체’라고 명명하며 주목받게 되었다.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기업들이 크게 가시화된 것은 이라크 전쟁 때였다. 이라크 전쟁은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많은 역할을 민간 기업이 담당하며 큰돈을 벌었는데 이라크 침략을 주도한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를 연결고리로 이라크 재건 사업으로 110억 달러를 벌어들인 핼리버튼(딕 체니는 부통령이 되기 전 핼리버튼의 경영자였다.)이 대표적이다.
전쟁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의 중심에 무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들이 위치한다. F-35 전투기를 생산하는 록히드 마틴이나 영국의 BAE가 대표적이다. 한국 기업으로는 비인도적 무기의 대표 격인 확산탄을 생산하는 한화와 풍산이 있다. 평화활동가들은 사람 죽이는 일 말고는 도무지 쓸 데가 없는 이런 무리를 만들어 사고파는 기업들을 전쟁수혜자WarProfiteer라고 명명하며 이들이 무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감시하거나 막는 활동을 펼쳐왔던 것이다. 보병이 중심이었던 1차 세계대전 때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직접행동이 병역거부였다면, 첨단 무기를 만드는 군수산업체의 이익에 의해 전쟁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수혜자들의 활동을 중단시키거나 억제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전쟁수혜자들에 대한 저항 캠페인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한국 평화활동가들의 무기 거래 감시 운동은 처음부터 어려웠다. 전쟁없는세상이 주축이 되어 준비하다 보니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여성과 병역거부자들이었고, 총 한 번 안 잡아본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어떤 무기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기를 생산하고 거래하는 것을 감시하려니 막막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기 체계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공부란 원래 좋아하는 것을 파고들어야 잘 되는 법인데 관심도 없고 심지어 싫어하는 것을 공부하려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무슨 일이든 기본기를 닦는 일은 초반의 길고 지루한 과정을 견뎌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무기와 무기 산업에 대해 공부를 해갔다. 무기의 세계는 파도 파도 끝이 없었고, 이러다가 평생을 무기 공부만 하다 죽을 거 같다는 불안감이 모두에게 엄습해올 때쯤,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확산탄 금지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했다.
확산탄은 커다란 폭탄 안에 작은 폭탄이 300개~500개가량이 들어 있다가 공중에서 큰 폭탄이 저절로 폭파되어 작은 폭탄들이 넓은 지역에 흩뿌려지는 무기였다. 정밀한 타격보다는 넓은 지역에 피해를 입히기 위한 무기였고, 그렇기 때문에 민간인의 피해가 다른 무기들보다 심각했다. 더욱이 작은 폭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불발탄으로 남아 있다가 지뢰처럼 몇십 년이 지난 뒤에 폭발해서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많았다. 확산탄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 시작하는 캠페인인 만큼 끝판왕을 상대하기보다는 그나마 만만한 상대를 고른 것이었다. 확산탄은 지뢰와 더불어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로 인식되고 있었고, 비록 한국은 가입하지 않았지만 확산탄의 생산 및 거래를 금지하는 국제 조약도 있었다. 유럽의 군수산업체들은 이런 이유들로 점차 확산탄 생산을 중단해가는 추세였고, 마침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산탄을 생산하는 기업들 가운데 국내 기업(한화, 풍산)이 있어서 캠페인을 펼치기 수월하다고 판단했다. 확산탄을 생산하는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확산탄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공적자금을 문제 삼아서 확산탄 생산 기업 투자 철회를 이끌어내고 결국 생산을 중단시킨 유럽의 사례를 적극 참고했다. 한국의 국민연금이 한화와 풍산의 대주주라는 점을 부각하며 “우리의 세금으로 비인도적인 무기 생산에 투자하지 말라”는 구호와 함께 확산탄 투자 철회 캠페인을 펼쳤다. 과거에도 기업의 특정한 상품을 문제 삼는 사회운동은 있었지만 대부분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일어나는 노동착취나 환경파괴를 문제 삼았던 것이고 상품 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아마도 처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나름 사회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대중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한 채 캠페인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생각하지 못했던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아랍의 봄이라고 부르는 중동 국가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2010년도 시작되었는데, 바레인에서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데 한국산 최루탄이 쓰인다는 제보가 전쟁없는세상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로 들어왔다. 바레인 출신 활동가들이 직접 알려줬는데, 바레인 정부의 무차별적인 최루탄 살포로 수십 명이 죽고 있는데 바레인에 가장 많은 최루탄을 수출하는 국가가 한국이니, 한국의 활동가들이 한국 정부를 압박해 최루탄 수출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최루탄이 쓰이지 않은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최루탄을 계속 생산하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알아보니 최루탄 수출은 방위사업청과 경찰청의 허가가 필요한 일이었다. 평화활동가들은 즉각 바레인에서 한국산 최루탄으로 많은 시민이 죽고 있다는 것을 한국사회에 알리고, 방위사업청과 국회 앞에서 정부가 나서서 최루탄 수출을 중단시킬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결국 추가로 수출하기로 되어 있던 최루탄이 바레인으로 수출되지 않도록 막아냈다. 한국산 무기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감각과 우리의 활동이 당장의 죽음을 막아냈다는 성과를 크게 남긴 캠페인이었다.
그 이후 전쟁수혜자들에 저항하는 한국의 평화운동은 개별 무기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무기 산업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전쟁수혜자들의 잔치, 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기박람회인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ADEX)’를 반대하는 행동을 펼치고 있다. 화려한 에어쇼와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우주 산업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ADEX는 실제로는 여러 방위산업체들이 참여해서 살상 무기를 거래하는 행사다. 무기를 사러 온 바이어들 가운데는 독재정권이 들어선 국가나 내전 중인 국가의 관계자들도 있다. ADEX에서 사고파는 무기들은 당장 실전에 투입되어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방위산업은 ‘미래 먹거리’ 혹은 ‘외화 벌어들이는 애국 행위’ 쯤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고, ADEX 또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개막식에 직접 참석하여 축사를 하는 거대한 행사다. 과연 이 대단한 죽음의 시장을 한 줌 밖에 안 되는 평화활동가들이 중단시킬 수 있을지 우리조차도 때로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전쟁이 바로 여기(ADEX)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여기에서 전쟁을 멈추는 행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