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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Dec 15. 2022

눈 오는 날 떠오른 생각

수원구치소 가는 날, 길 가에서 있었던 일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기도 했고, 원래도 감옥 생각을 별로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눈이 오는 날이면 감옥 생각이 나곤 한다. 한 번의 겨울밖에 나지 않았지만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겨울에 나는 눈을 딱 한 번 봤다. 군산교도소 취사장에서 김장이 끝나고 보안과 소지로 옮겼다가 재판을 받으러 수원구치소로 이감을 갔다. 병역거부로 구속되기 직전, 평택 대추리에서 연행된 사건 재판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보안과 소지는 비교적 편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군산교도소에는 친구 부르뎅이 있기 때문에 나는 군산교도소에 머물고 싶었지만 뭐 수감자가 머물 곳을 결정할 수 있나. 


수원구치소는 아파트형 건물이었다. 가운데가 뻥 뚫린 'ㅁ'자 모습이었다. 네모의 안쪽으로 방이 층층이 쌓여있었고 바깥쪽은 복도였다. 복도 맞은편 벽의 가장 꼭대기에 한 뼘 정도 크기의 창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원체 작은 창이기도 했고 창살이 촘촘하게 박혀 있어서 밖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머무는 미결 사동은 12층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아주 희미하게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저 아래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인지 구치소 벽에 부딪히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이 오는 날은 소리마저 들리지 않으니 나는 눈이 오는 날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하늘이 유난히 어둡고, 그런데 빗소리는 안 들리고, 밖에서 오는 편지가 조금 젖어있는 날이면 눈이 오나보다,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 겨울 딱 한 번 눈을 본 날은 감옥 밖, 도로에서였다. 아마도 군산교도소에서 수원구치소로 이감 가는 날이었을 것이다. 이감 갈 때는 흔히들 닭장차라고 부르는 전경 버스 비슷한 것을 타고 간다. 대형버스고 창은 열리지 않는다. 창 안쪽으로는 철조망 같은 것이 있어 시야를 방해하지만 그래도 바깥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수감자들은 굴비 엮이듯 줄줄이 엮인 채 버스에 탔다. 손에 수갑을 채운 채로 포승줄로 손목을 한 번 더 묶은 뒤 앞뒤로 또 줄줄이 엮었다. 수갑을 채울 때는 손목을 양쪽 바깥 방향으로 비틀어 채운다. 아프기도 하지만 손 모양이 이렇게 되면 몸에 힘을 줄 수가 없고 굉장히 수치스러운 느낌이 든다. 거기에 포승줄로 줄줄이 묶이면 내 몸만이 아니라 나의 인간성 같은 것들도 포박당한 기분이 된다. 무슨 짐짝이 된 거 같기도 하고. 수갑도 포승줄도 몸을 속박해 도망 못 치게 하려는 용도뿐만 아니라 수치심을 강요해 도망 못 치게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도망은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수치심에 지배당하면 우리는 그런 용기를 낼 수 없다. 


줄줄이 엮였기 때문에 이동할 때는 한 줄로 천천히 걸어야만 했다. 누구 한 명이 조금 빠르게 혹은 느리게 걷거나 옆으로 걸으면 대열이 엉켜 모두 넘어지기 십상이다. 호송차는 당연하게도 휴게소 같은 데서 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동 중에 소변이 마려운 경우에는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도로에 나가서 소변을 보게 한다. 한 줄로 엮여 있으니 한 명만 소변을 보러 나가려 해도 다 같이 나가야 한다.


그날도 누군가가 소변을 보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모두 줄줄이 한 줄로 버스 밖으로 나갔다. 차창 밖으로 눈이 오는 걸 이미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눈을 맞고 싶은 마음에 아무런 불평 없이 나왔다. 푸른 옷을 입은 성인 남성들이 도로 갓길에서 한 줄로 서서 앞을 바라보고 소변을 본다. 오줌도 전염이 되는지, 옆사람이 소변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소변이 마려워 결국 모두가 소변을 본다. 서로 민망해서인지 옆을 힐끔거리는 기척 없이 모두가 앞을 보고 조용히 눈을 맞았다. 


포근한 함박눈이 우리의 수치심을 덮어주었다.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 



글과 아무 상관 없는 사진. 겨울에 일본 홋카이도 갔을 때. 온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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