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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an 01. 2023

슬픔의 방문

짧은 리뷰

꺾이지 않는 마음, 이라는 말을 모두들 좋아한다. 나는 그 말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쩐지 목에 걸린 자그만 가시 마냥 꺼끌거렸다.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이야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대체로 살아가는 일은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일이고,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잘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 때도 있다는 걸 나이 먹으면서 점점 깨달아간다. 노력한다고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고, 애당초 노력조차도 하지 못할 일도 우리는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니까.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는 잘 꺾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이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잘 꺾이는 것도 다시 일어나는 것도 꺾이지 않는 마음만큼이나 어렵다.


장일호 기자의 책 《슬픔의 방문》을 보면서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 책을 누군가는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책으로 읽을 수도 있다. 가난했던 성장기, 어릴 적 성폭력의 경험,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질병.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슬픔 앞에서 꺾이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고난 극복 서사의 요건을 다 갖추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자는 슬픔을 이기거나 극복하려고 악다구니를 쓰지 않는다. 아마도 저자에게 "어떻게 슬픔을 마주하며 꺾이지 않았습니까?"라고 질문하면 "저 계속 꺾였는데요? 아니 애초에 꺾이지 않으려 애쓰지도 않았는걸요."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그렇다고 슬픔에 잠식되어 눈물바다에 잠겨 허우적 대지도 않는다. 씩씩하다면 씩씩한 태도지만 그의 씩씩함은 어쩐지 슬픔의 얼굴과 닮아있다.  


많은 이들이 슬픔을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슬픔은 차디찬 감정이 아니라 온기를 품은 정서고, 우리는 슬픔을 배제한 채 살아갈 수 없다. 슬픔이 과하면 탈이 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슬픔을 불쌍하게 보거나 불행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감옥에 있을 때, 그 시절의 나는 분명 몸과 마음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가끔씩 사람들이 나를 불쌍한 사람처럼 대하는 것은 더 싫었다. 그 슬픔은 나의 것이었고 나는 그 슬픔을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고 슬픔을 마주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아무도 대신 슬픔을 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슬픔은 그 사람에게 고유하게 속한 것이고 우리는 슬픔이 방문한 사람의 옆자리에 있어주는 것이 최선이다.


너무 과하지 않다면 슬픔이 없는 상태가 나는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슬픔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과거의 나는 슬픔을 크게 느꼈다. 나를 움직이는 감정은 분노보다도 슬픔이었다. 철거촌에서, 철거민들을 폭행하는 용역깡패에 대한 분노보다도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릴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슬픔이 내 에너지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슬픔을 대하는 장일호 기자의 태도에 나는 마음이 많이 갔다. 슬픔과 더불어 살지만 잠식당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찾아가며 슬픔의 얼굴을 기꺼이 바라보려는 태도였기 때문에. 그래서 북토크도 신청해서 갔다. 이래저래 인연이 겹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북토크 때 처음 만나게 되었다. 장일호 기자는 북토크 내내 유쾌했고, 그렇다고 그 유쾌함이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다. 어쩐지 슬픔도 그 자리에서 함께 하며 즐기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북토크였다.


북토크 때 장일호 기자가 했던 말 중에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저자 소개에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넣고 싶었다는 말. 암투병을 하면서도 계속 시사인 기자일 수 있었던 것은 시사인에 노조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통령과 여당의 중요 정치인들이 연일 민주노총을 악마화하는 시대에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장일호 기자의 말은 더욱 크게 들렸다.


그리고 엄마나 동생은 책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묻는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 "우리가 왜 장일호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아야 하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저자는 자신의 삶의 많은 결을 드러낸다. 그러다 보니 엄마나 동생의 치부라면 치부일 수도 있는 이야기도 책에 등장하는데, 그래서 다들 엄마와 동생의 반응이 궁금했을 것이다. 장일호 기자는 아직 말을 하지 않았다며, 아마 자신이 말하지 않는다면 엄마와 동생은 평생 동안 자기가 책을 낸 지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장일호 기자의 책에 쓰인지도 모를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하는 표정에는 약간의 슬픔 같은 것이 깔려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동생의 말 중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누나가 사는 세계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계급, 다른 경험, 다른 삶이라는 것.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지만 피부로는 느끼지 못하는 감각. 나는 최저임금을 받는 경제적 빈곤층이지만, 돈만 없지 다른 사회적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내 식구들, 내 친구들과 동료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가난하고 다른 사회적 자원은 풍성한 편이다. 자의로 책을 안 읽는 경우는 있어도 책을 접할 일이 없는 삶에 대해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북토크의 문답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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