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마녀들>을 읽고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이한 경향신문의 시리즈 '우크라이나 1년'을 읽으면서 하는 생각이 많아졌다. 당연하게도 전쟁터의 많은 사람들, 특히 침략당한 국가의 국민들은 결국 양쪽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 평화협정보다는 자국의 승리를 바라게 된다. 기사에 등장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그랬다. "우크라이나의 승리 없는 평화는 없다." 하지만 박은하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말하는 승리는 피의 복수가 아니라 존엄의 회복이었다. "푸틴을 전범재판에 기소해서 전 세계에 문명과 ‘존엄’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내가 존엄이라는 단어에 크게 흔들린 까닭은, 존엄이 저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히 전쟁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회사 다닐 때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저항하는 자만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러시아의 침략에 저항함으로써, 비록 죽고 다치지만 스스로 존엄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내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과 전쟁을 평화적으로 종식하는 일이 서로 부딪히기 때문이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고 러시아가 패배해야만 가능한 일인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반대로 러시아가 승리하고 우크라이나가 패배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평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쟁의 끝이 무엇인지-평화협정인지, 휴전인지, 전투의 중단인지, 혹은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무엇인지-돈바스 지역을 재탈환하는 것인지, 크름반도까지 되찾는 것인지, 푸틴의 항복 선언을 받아내는 것인지도 복잡한 이야기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속되는 전투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죽고 다치고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될 텐데, 그 끝이 승리일 순 있어도 그 과정을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저항과 평화가 갈등하는 상황. 존엄과 평화가 부딪히는 난감한 딜레마는 전쟁이 던진 어려운 문제다. 전쟁이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고, 우리 모두에게 범죄를 강요하는 거대한 힘이기 때문에, 전쟁이 던진 질문에 우리가 뭐라고 답하든 모든 답은 틀린 답일 수밖에 없다. 틀린 답을 정성껏 써 내려가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답답하니 책을 계속 읽게 된다. 이번에 읽은 책은 <냉전의 마녀들>이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 지역의 전쟁 피해를 조사했던 국제민주여성연맹(이하 '국제여맹')의 조사위원회 활동에 대한 책으로 국제여맹 보고서, 조사위원들 개개인의 기록과 당시의 문헌 자료와 최근의 연구 자료를 두루 참고해 국제여맹에 대한 소개와 조사위원들 개개인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들의 북한 지역 조사 활동을 상세히 보여준다.
국제여맹의 보고서는 발간 당시, 그리고 그 이후 꽤 오랫동안 "소련과 북한의 정치선전물로 쉽게 단정(9쪽)"당했다.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과장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명백한 오류(이 오류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논증도 하고 분석도 한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공군의 한국전쟁 당시 북한 폭격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미공군의 자료와 폭격 직후 북한을 방문했던 국제여맹 조사회원회 보고서의 자료가 상당히 일치하다는 것을 깨닫고 국제여맹 조사위원회를 파고들었다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연구자들이 국제여맹에 대해 연구한 자료를 살펴보며 국제연맹에 대한 오해를 풀었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꽤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단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란시스 더한에 따르면 국제여맹은 "진보적 '좌파 여성주의' 국제 우산조직"이었다. 전 세계 진보적 여성단체들을 아우르고 연결하는, 요새로 치면 국제네트워크 단체 정도인 거 같다. 국제여맹 소속 조직들의 회원을 합치면 9100만 명에 달했고, 유엔경제사회위원회 자문 역할, 여성지위위원회 같은 유엔 내부 기구 활동도 활발했다고 한다. 이것만이었다면 크게 매력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국제여맹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반식민주의였다. 나는 국제연대에 밝은 편은 아니지만 지금도 백인들만의, 혹은 백인들이 과도하게 주도하는 그룹은 계급문제나 기후위기와 같은 전 세계적인 이슈를 접근할 때 철저하게 백인들의 시선으로 접근하고, 자기들의 조상이 뿌려놓은 식민주의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당시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도 승전국인 연합국의 식민지들은 여전한 지배에 놓여있었고, 식민지 여성들은 파시즘에 맞선 자유의 편(식민지 모국)으로부터 착취당하고 있던 시절이다. 지금의 많은 시민사회 네트워크들이 그러하듯, 당시 국제여맹도 프랑스의 여성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고 반파시즘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성들, 아메리카 대륙의 유색인종 여성 대표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다. 그것은 반파시즘이라는 시선이었다. 식민지 여성들의 저항과 투쟁은 반파시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들은 "파시즘을 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재해석해내야만 한다고 생각(65쪽)"했던 것이다. 반식민주의라는 특성 덕분에 국제여맹은 파시즘과 식민주의에 신음하고 있던 유럽(스페인), 남미(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 동아시아(인도, 말레이시아, 버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북한)를 두루 조사한 세계유일의 여성단체였다.(68쪽~69쪽)
저자는 국제여맹의 조사위원들도 면밀하게 검토한다. 개개인의 기록과 공식조사보고서, 그리고 각국에 남아 있는 조사위원 개인에 대한 자료까지 샅샅이 살펴본다. 21명의 조사위원들은 매우 정치적 성향에서부터 직업, 출신국가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였다. 중국, 러시아 같은 북한의 우방국가 출신부터 영국처럼 남한 편에서 적극적으로 참전한 국가 출신까지 두루 참여했다. 한국 전쟁 당시 평범한 주부였던 이부터, 정부의 중요한 정책 책임자, 언론인, 과학자, 변호사처럼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군수품을 납품한 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부터 자국에서 부수주의자로 분류되는 이들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지금보다 훨씬 심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우뚝 선 거인들이 국제여맹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본디 국제여맹의 회원 단체 출신도 있었지만, 이 책의 실직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펠튼처럼 국제여맹과 아무 관계가 없다가 추천을 받아 합류한 사람들도 있다. (펠턴이 조사위원을 하게 된 동기와 펠턴의 시점에서 돌아본 조사위원회 활동이 무척 흥미로운데 이 글의 초점과는 거리가 있으니 다른 기회에 더 들여다보고 싶다)
다양한 배경의 개성 강한 조사위원들은 출발 전부터 조사위원 활동을 마칠 때까지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예컨대 노라 로드 조사위원회 위원장이 북한으로 들어가기 직전 조사위원들을 맞이한 선양지역 대표의 환영연설에 대한 답사에서 정치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답사를 하자, 이에 반발하는 심사위원들이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서로 다른 국적, 다른 정치적 신념, 다른 배경을 가진 조사위원들 사이의 갈등은 책 저자인 김태우 교수가 국제여맹의 보고서가 소련과 북한 정부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을 내리는 근거이기도 하다. 보고서의 치명적인 오류에 대해 저자는 왜곡의 주체로 현지 인터뷰이들이나 국제여맹 조사위원들이 아니라 통역관들을 의심한다. 그들은 인터뷰이들에 비해 소수였고, 북한 정부의 통제를 받기 쉬웠기 때문이다.
조사보고서에 북한이 그렇게도 바라는 내용-한국전쟁 개전에 대한 미국의 책임이 들어가지는 않았던 점, 조사위원들이 만든 영문 보고서와 북한에서 번역한 국문 보고서의 차이점 또한 저자의 추론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조금이라도 좋게 묘사되는 내용이나, 북한 정부에 불리한 내용이 한국어 보고서에서는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여맹 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특히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철저히 보고서의 존재 자체를 무시했고, 보수적인 여성단체들을 내세워 국제여맹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국제여맹은 1954년 유엔 내에서 모든 지위를 상실했다.
수난은 조사위원들 개개인에게로 이어졌다. 혁명 이전 쿠바에서 변호사였던 로드리게스는 "한국에서 보고 들은 것을 계속 대중에게 알리고 다녔다"(302쪽)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고, 서독의 베히터는 한국전쟁에서 보고 들은 것을 독일 전역에 알리고 다녔는데 "선동적 발언" 죄목으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냉전의 마녀들>의 주인공 격인 영국의 펠턴 또한 스티버니지 개발공사 총재 자리에서 해임되었고 일부 보수당 의원들은 펠튼이 왕과 국가에 충성하지 않고 "왕의 적들을 고무하거나 그들에게 편리를 제공" 했다며 당시 사형에 해당하는 반역죄를 주장했다. 조사위원회 활동 내내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조사위원들과 팽팽하게 맞섰던 펠턴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일이었다. 이후 1995년 국방부가 새 책을 출간하면서 펠턴에 대한 비난이 다시 일자, 펠턴은 영국을 떠나 인도로 간다. 죽을 때까지 인도에서 인도 여성운동가의 전기를 쓰는 식으로 "자기 방식의 탈식민주의적 평화운동과 여성운동"(305쪽)을 이어간다.
내가 가장 주의 깊게 읽은 부분은 전시 성폭력을 다룬 '7장 나의 이름으로'다. 조사위원의 면면, 그리고 국제여맹이라는 조직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일 텐데 국제여맹의 결과보고서는 한국전쟁 시기 북한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냉전의 마녀들> 은 보고서에 기재된 차마 믿기 힘들 정도의 성폭력의 양상(자세한 내용은 책 248쪽을 참고하기를. 너무 끔찍해서 이 서평에는 옮기지 않는다.)을 20세기에 일어난 다른 전시 성폭력에 포개어 본다.
1990년대 유럽에서 일어난 보스니아 전쟁에서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적어도 2만 명 이상을 강간하고 고문했다. 성폭력 피해 여성의 숫자는 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1990년대에 지속된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에서는 5만~6만 4천여 명의 여성이 전투원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르완다 집단학살 기간 동안에는 약 25~50만 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소련군은 베를린으로 진격하면서 최소 200만 명이 넘는 (동유럽과 독일의) 여성들을 강간했다고 한다. "전후에도 독일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 출산, 낙태, 트라우마, 주위 사람들의 낸대 등으로 끔찍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1945년 5월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독일 여성들의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251쪽) 북한 여성들이 한국 전쟁 당시 겪은 일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폭력은 전쟁에서 예외적인 사건아 아니라, "전쟁의 가장 본질적인 구성요소 중 하나"(253쪽)인 것이다.
비단 성폭력만이 아닐 것이다. 전쟁에서 일어나는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파시즘과 맞서 자유세계를 수호한 전쟁으로 이야기되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군대는 나치만이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한 소련군의 성폭력,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 같은 일들은 무수하게 반복된다. 전시 강간을 저지르거나 민간인 학살 같은 일들이 상대방의 사기를 꺾기 위해 일어나기도 하고, 침략당한 국가의 군대가 보복하기 위해 침략한 나라의 국민을 대상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기도 한다. 정의를 위한, 정의로운 과정의 전쟁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군대들조차도 정의와 인권을 짓밟는 방식으로 전쟁을 이어간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군사적 저항을 마냥 지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 정부에 확산탄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확산탄은 지뢰와 더불어 민간인의 피해가 큰 가장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다. 러시아가 전쟁 초기에 확산탄을 사용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국제사회에서 큰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만약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확산탄을 지원한다면, 결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에게 확산탄을 쏘아대며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고, 전쟁터의 민간인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확산탄의 불발탄과 함께 끝나지 않은 전쟁을 살아내게 될 것이다. 내 예상이 틀리기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확산탄을 지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군사적 저항과 달리 시민이 주도하는 비군사적 저항은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저항 방식이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비군사적인 저항을 심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받아들이진 못했다. 민주적인 방식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전쟁은 폭력의 블랙홀 같다. 너무나 거대한 중력으로 다른 모든 것을 폭력으로 끌어들인다. 대화, 타협, 협상, 경계와 같은 단어는 설 곳을 잃고 그 자리에 민족, 국가, 승리 같은 단어들이 잔뜩 힘을 주고 들어선다. 무력감이 들 때도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이 안 보일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럴 때가 위험하다. 좌절감은 우리를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다.
<냉전의 마녀들>의 마지막에 인용된, 조사위원회에 옵서버로 참여한 뒤 한국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덴덴마크의 플레론이 기고한 글의 한 구절은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무엇을 하든 우리가 고려하고 명심해야 하는 것을 일깨워준다.
"덴마크인들은 '침략자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완벽한 정의뿐만 아니라, 그 전쟁의 지속(continuation)과 형식(form)에 대해서도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318쪽)"
전쟁의 지속과 형식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완벽한 정의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