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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ug 28. 2023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짧은 리뷰 


최은영의 소설로 여름을 견뎠다. 그것만으로도 퍽 감사할 일이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은 더할 수 없이 좋았다. 최은영을 알고 난 뒤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꼭 최은영을 포함시키곤 한다. 무엇이 좋았냐고 물어보면, 내가 소설을 비평하고 분석할 능력이 되지 않으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슴 깊숙이 은근히 오래 남는 어떤 종류의 감정이 남는 거 같아서, 그런 기분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크게 기대해도 늘 기대 이상을 보여준 최은영 작가의 책 중에 유일하게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단편보다도 짧은 소설을 모아놓은 애쓰지 않아도. 인물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다루는 최은영의 장점이 너무 짧은 소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장편은 별로면 어떻게 하나,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읽은 밝은 밤은 대체 내가 왜 걱정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푹 빠져 읽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물이었으니 더더욱 그랬을지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나니 어쩐지 밝은 밤에서 감지되었던 어떤 느낌이 확실해지는 기분이다. 와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의 모든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외국의 주된 배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신짜오 신짜오'에서는 독일, '한지와 영주'에서는 유럽 어디 수도원이었나? 그러니까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과는 조금 떨어진 이야기였고, 그러면서 인물들 간의 관계가 아주 섬세하게 다뤄졌다는 느낌으로 최은영의 소설을 기억하고 있다. 


밝은 밤에서는 본격적으로 여성 3대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 땅에서 살아왔던,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이 소설에 드러났는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좀 더 직접적인 언어로 보여준다. 최은영 작가의 은은한 감정 전달을 좋아했던 독자들에겐 좀 낯선 느낌일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렇다고 김남주의 시나 <다음 소희> 같은 영화처럼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여성들이 겪는 차별 혹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다. 여전히 최은영은 인물들 사이의 관계의 미세하고 섬세한 균열과 갈등을 예리하게 보여주면서, 인물(주로 여성)들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도 예전에 비해 직접적으로 인물들의 입을 빌러 말하는 정도다. 문학 연구자, 전문직 기술자, 기자, 수감자, 학생, 드라마 작가, 파일럿, 식모 등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펼쳐 보여주는데, 그렇다고 이 시대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나 르포 같은 느낌은 아니다. 정치적인 주장을 강하게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은근한 농도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변화가 작가가 나이를 먹어가며 한국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겪는 경험이 녹아들어 간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최은영의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은 글쓰기라는 행위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주인공들은 글쓰기를 매개로 관계가 깊어지고, 대학 신문사에서 만난 '몫'의 주인공들의 관계에서도 기사 쓰기는 중요한 갈등 요인이다. '답신'은 수감된 이모가 조카에서 쓴 편지고, '파종'에서는 주인공 엄마의 직업이 드라마 작가이며 엄마와 주인공이 연결되는 매개 또한 주인공이 쓴 에세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글쓰기를 매우 중요한 행위로 인식하고 있고, 최은영 작가는 소설 속 사건과 갈등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소재로 인물들의 글쓰기를 활용한다. 글쓰기에 대한 인물들의 진지한 대화를 엿보다 보면, 이 소설집에 곳곳에 최은영 자각가  글쓰기에 대해 무언가 고민이 많았던 흔적이 묻어있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해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32쪽)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몫', 75쪽)


아마도 요새 내가 글쓰기가 퍽 어려워 이 지점이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글도 쓰지 않게 되었는데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을 신중함이라고 포장한 것은 아닌지 부끄러웠을까? 그래도 어렵고, 지치고, 괴롭고, 부끄러워도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니, 나도 계속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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