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군축행동의 날 토크쇼 '예산 삭감에 성난 사람들' 후기
어제 2024 세계군축행동의 날 토크쇼에서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장애, 여성, 기후위기, 재난대응 분야 활동가들이 예산 삭감이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가,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서 얼마나 후퇴하고 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장 앞장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라, 고민이 꽤나 입체적이었다.
가령 재난대응에 있어서 예산이 늘고 국가와 정부의 책임이 강조되어야 하지만 그 결과가 군사화 혹은 감시와 통제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염려 같은 것들,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비율이 늘어야 하는데 군대에서 여성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은 활동가들이기 할 수 있는 현장과 이론과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고민이 아닐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는데 여성가족부의 2024년 전체 예산이 1조 7153억 원인 반면, 2023년 대비 2024년 국방비 인상액만 해도 약 2조 4천억(2024년 전체 국방비는 59조 4244억)이라는 대비였다. 국방비 인상액만도 못한 여가부 예산이라니. 나는 이 대비가 바로 국가안보란 무엇인지, 누구를 무엇을 지키는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가장 어려운, 그리고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을 관통하는 질문은 토크쇼 막바지에 나왔다. 피스모모에서 활동했던 주원님이 던져주신 질문은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여기 오신 분들은 이 토크쇼의 제목에 다들 동의하실 거 같아요. '군사비를 줄여 사람과 지구에' 그런데 여기서 후자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동의하는 말이잖아요. 사람과 지구를 살리자는 말은. 하지만 전자, 군사비를 줄이자는 주장은 제가 활동가였을 때도, 지금도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이걸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토크쇼 패널들은 각자 생각을 말씀해 주었다. 투쟁으로 돌파하자는 의견, 우리가 하는 일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니 힘 잃지 말자는 의견,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데이터(숫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기억난다.
내 경험상으로는 군사비 축소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아주 기막힌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군사비 축소 이슈만이 아니다. 국방이라든지 군사안보에 대한 이야기에서 평화활동가들은 늘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거나, 애국심도 없고 안보에 무임승차하는 비겁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군사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사회에서 평화주의자들의 자리는 없거나 아주 협소하다.
그렇지만 평화주의자들이 우리들끼리만,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우리 이야기에 동의하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하고만 대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변하려면 결국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혹은 그 사람들이 최소한 자신이 보편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생각이나 판단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도 같은 건 없고,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아주 천천히 사람들이 이 사안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생각이 바뀌기도 하겠지.
이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근육이 필요한 것과 별개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말할 필요성을 느낀다. 결국 평화운동이 다루는 이슈의 특수성보다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기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평화활동을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는,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누군지를 세분화하고, 각각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그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분석해서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기자회견장이라면 듣는 사람들은 기자들이다. 기사를 쓰려고 온 기자들의 도덕심에 호소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기자들에게는 기사에 인용할 만한 멘트, 통계,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다. 기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주최하는 강의 같은 곳에서는 군사비 이야기를 다르게 이야기하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군사비를 늘리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것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다양한 사례를 주로 이야기하는 편인데, 반응이 호의적이라면 여기서 더 나아가 군사비를 늘리는 것이 오히려 그 나라의 평화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례(미국의 공격적인 대외정책과 911 테러의 상관관계)와 함께 이야기한다.
반면 내 이야기에 반대하는 의견이나 질문이 나올 때도 있다. 최근에 했던 한 강의에서 받은 질문인데 "군사력이 약하면 결국 북한이 또 쳐들어오면 나라를 빼앗기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라면, 나는 이분에게 평화주의의 최대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분과 내가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 노력한다. 전면적인 군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에 마음을 모으려 노력한다. "선생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군대를 없애거나 군사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죠.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군사비는 지나치게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과유불급이죠. 북한의 GDP보다 많은 돈을 군사비로 쓰고 있는 건데, 이게 만약 일반 기업이었다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거죠. 국방부는 진작 퇴출되었을 수준입니다. 그러니 군사비를 줄이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논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적정한 군사력과 그에 따른 군사비가 얼마인지 합리적으로 책정된 적도,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적정군사력에 대한 제 의견에 선생님도, 다른 분들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 의견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겠죠. 다만 이야기해 보자는 거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채로, 막대한 군사비를 그야말로 낭비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식이다.
물론 강의에서 만나는 분들과의 대화는 1대1 대화 혹은 1대 십 수 명의 대화고, 캠페인 차원에서 건네는 메시지는 이보다는 훨씬 불특정 한 다수를 청자로 삼기 때문에 다른 스킬이 필요하고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 그리고 지루하고 지난하게 노력을 이어갈 끈기, 끈기의 바탕이 되어줄 마음과 몸의 체력이 필요하다.
어쨌든 나는 군사비 축소, 혹은 평화운동의 주장이 가지는 특수성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는 않기로 했다. 왜 우리가 다루는 이슈는 이렇게 어려운 거야, 라는 생각은 대체로 문제 해결에 도움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슈의 특수성보다는 대화와 설득이라는 좀 더 전통적인 정치/운동의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려고 한다. 우리가 다루는 이슈의 특수성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라면, 대화와 설득의 기술은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방식'이다. 전자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후자에 방점을 찍고 싶다. 느리더라도, 더디더라도, 가장 정확한 길을 걷는 것이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