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May 19. 2020

쏠 수 없는 총을 든 사람들

서평 - 소년이 온다

대학생 때 나는 나름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 당시 내가 속한 학생운동 조직은 맑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조직이었다.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혁명을 꿈꿨고, 자본가들이 권력을 그냥 내려놓을 리가 없기 때문에 혁명의 순간에는 폭력을 수반한 충돌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깊게 생각한 건 아니고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그 해에 우리 조직이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활동은 바로 병역거부 운동이었다. 조직의 몇몇 선배들은 병역거부 선언을 했고, 나와 내 동기들 중 몇 명은 영장이 나오면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예비 병역거부 선언을 했었다.


방학 때면 우리는 합숙을 하면서 역사, 정치, 철학 등등을 공부하고 토론도 했는데, 한 번은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근데 혁명의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혁명은 폭력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병역거부를 선언한 우리가 충돌했다. 총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자니 오지도 않을 혁명이 걱정되었고, 혁명을 위해 총을 들겠다고 말하자니 병역거부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 거짓말이 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모두 갈팡질팡했다.


지금이야 병역거부 관련 세상 모든 질문에 답할 자신도 있지만 당시 나는 정말 평화주의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병역거부 소견서에도 썼다시피 나는 오히려 병역거부자가 되고 나서 평화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거지, 평화주의자여서 병역거부를 결심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실 언제 어떻게 올지도 모르는 혁명의 순간을 고민하는 건 어쩌면 덜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나를 가장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은 이런 거였다.


“그렇다면 너의 양심은 80년 광주에서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아 계엄군과 싸우던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는데?”


이건 병역거부자가 되고 나서도 한동안 나를 당혹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내 당혹스러움은, 도청을 끝까지 지켰던 사람들의 모습이 견결한 신념을 가진 투사의 모습처럼 느껴졌다기보다는 끝내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한 사람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죽음이 혁명운동의 씨앗이 되어 훗날 피어오를 거라는 믿음을 가진 분들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자기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도청에 남았던 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감히 말하자면 나는 그분들의 행동이 병역거부자들의 병역거부와 유사점이 있다고 느꼈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런데 행동은 정반대였다. 도청에 남은 분들은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총을 들었고, 병역거부자들은 양심에 따라 총을 거부했다. 이 대비가 나를 당혹하게 했다.




병역거부자와 오월 광주는 결코 만날 수가 없는 걸까? 그렇다면 병역거부자인 나는 오월 광주, 특히나 도청의 마지막 밤을 지킨 분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지?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나는 소설 속에서 찾았다. 소설가 한강이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쓴 『소년이 온다』. 이 소설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도청의 마지막 밤을 묘사한 구절이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소년이 온다』 117쪽


정말로 그랬는지, 소설가 한강이 들은 이야기인지, 아니면 창작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거부할 수 없는 양심의 목소리를 따라 도청에 남은 이들. 아마도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걸 예감했을 것이다. 저 눈 앞의 계엄군을 쏘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박노자는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에서 2차 대전 당시 군인들의 조준 사격률이 15%도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죽이는 일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당시 도청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는 소설처럼 손에 쥔 총을 쏘지 않았거나, 하늘을 향해 총을 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만 같다.


만약 내가 오월 광주 도청의 마지막 밤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면, 그러면서 병역거부자였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내가 과연 오월 광주에 살았다면, 지금 생각으로는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도청에 남지는 못했을 거 같다. 그렇더라도 나를 당황하게 했던 질문에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도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을 거라고. 총을 들고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총을 쏘지 않으면서 계엄군과 싸웠을 거라고. 그들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을 거라고.






건방지게도 예전에는 기록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글씨를 예쁘게 못 쓰니 기록을 해도 내가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었는데, 실은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기록해놓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합니다.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엇을 읽든, 보든,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려고 합니다. 그래야 기억합니다. 한편 기록을 남기는 것은 생각을 하는 일입니다. 머릿속에 둥둥 떠 다니는 막연한 아이디어나 구체화하고, 정체 모를 감정을 마주하려면 글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매거진에는 각종 책, 영화, 드라마의 리뷰를 남기려고 합니다. 거창한 비평은 깜냥도 여력도 안 됩니다. 이 기록들의 독자는 우선 저 자신입니다. 6개월 뒤, 1년 뒤, 3년 뒤 제가 보고 희미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이정표입니다. 물론 같은 책을, 같은 영화를 본 분들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이 글은 새로 쓴 글은 아닙니다. 몇 년 전 5월 18일에 써서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이 매거진에 올릴 글은 대부분 새롭게 쓴 리뷰지만 간간히 예전에 썼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리뷰들도 다시 올릴 생각입니다.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니 제가 보기 편하게 한 곳에 모을 생각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