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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현 Dec 20. 2020

내가 너의 운명의 짝이라고?

-그 고백이 불쾌했던 이유

“누나, 나 누나를 좋아해. 혼자서 고민도 많이 해보고 기도도 해봤어. 그런데 나는 누나가 내게 딱 맞는 운명의 짝인 것 같아. 확실해! 그러니 어리다고 그냥 웃어넘기지 말고 내 마음을 받아줘. ” 친하게 지내던 동생 J가 어느 날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룸메이트 S에게 털어놓았다. S와 J는 모두 함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우리는 한참을 머리를 싸매고 한숨만 쉬었다. S는 아주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고, 앞으로 얼굴 보기 껄끄러울 것이 걱정되어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나는 네게 전혀 마음이 없고, 운명의 짝이나 기도의 응답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절대 네가 어려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야. 일방적으로 표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J는 알고 지낸 지 1년 정도 된 동생이었는데, 친구들과 다 같이 친했던 나의 기타 선생님이었다. J를 같이 알던 다른 친구를 통해서 소개를 받아 기타를 가볍게 배우고 있었다. 같이 아는 친구들과 여럿이 함께 기타를 배우고 레슨이 끝난 후에는 다 같이 밥을 먹기도 했지만 나는 물론이고 친구들 중 그 누구도 J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J는 언제나 내게 핀잔을 주고, 친구를 괴롭히고 못된 짓을 했던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많이들 그랬던 것처럼 좋아하는 친구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일부러 장난을 치고 못되게 굴었던 종류가 아니었다(물론 좋아한다고 괴롭혀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J의 이야기에 모두가 마지못해 하하 웃는 일,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 밥만 서둘러 먹고 모임을 파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도저히 그 불쾌함을 참지 못해 나는 두 달 정도를 J에게 배운 뒤에 이제 회사 일이 바빠져서 잠시 기타를 중단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 직후였다. 매주 두 번씩은 보다가 만나는 일이 없어지니 내게 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고 결심을 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은 나의 기분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J의 고백이 왜 나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생각하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확장되었다. J와의 경우를 통해 나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소통하면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느낌을 주거나 상처를 주고 불쾌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상처 받지 않고, 내가 오래 유지하고 싶은 관계를 만들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여유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J는 나보다 네 살이 어렸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상태였다. J는 문자를 통해 나이 차이가 있어 안정된 상황인 나에 비해 자신의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고 조바심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그 마음이 J가 나와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도록 만든 원인이 아니었을까. 


불안과 조바심이 말과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더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부정적인 모습을 더 많이 꺼내게 만든다.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기 위해 상대방의 마음까지 단정 짓고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 실수가 J의 고백을 받고 내 마음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었고, 룸메이트 S의 강하고 칼같이 단호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남녀 관계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쌓였어야 할 배려와 존중, 상호 작용, 신뢰가 부족했던 것이다. J는 나의 답장 이후로 어떤 대답도 없었고 고백 사건을 모르는 친구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만큼 모두에게 쌀쌀맞게 굴었다. 이 상황이 모두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괜히 문자로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일만한 말을 한 것 같았다. 차라리 전화로 이야기하거나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후회도 되었다. 


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데 서툴고 소통하는 데 있어 공포증이라고 할 만큼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J와의 일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나야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며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내 곁에 감사하게도 나의 서툰 모습을 이해해주고 그대로 받아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나의 모나고 부족한 모습을 안아준 것이지 그들이 상처 받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내 곁에 있어줘서,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표현이 서툴고 투박하겠지만 진심을 그대로 표현하는 연말을 보내야겠다. 마음을 주고받는 도구인 말을 편안하게 그리고 언제나 따뜻하게 사용하는 날까지 성실하게 갈고닦아야겠다. 나의 고백이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주는 강요가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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