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걸려 온 엄마의 전화
(2018.8.)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별로 받고 싶지는 않았어. 무슨 얘기를 할지 뻔했으니까. 나는 이제 겨우 모든 것에서 벗어나 홀가분한데 다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도 왠지 모를 의무감에 전화를 받았지.
엄마가 나보고 언제 오냐고 물어봐. 내가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거야. 내가 한국에 있을 때랑 똑같이 돈이 없다는 얘기, 도움이 안 되는 가족 얘기, 몸이 안 좋다는 얘기. 맨날 똑같아. 심지어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데도 나한테 계속 얘기해.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의 일부를 엄마한테 보내줘야 하나? 그런데 나도 지금 돈을 벌고 있는 상황이 아니고 언제 돌아갈지, 앞으로 얼마가 필요할지 모르는데.’
항상 엄마는 얘기해.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고, 그냥 할 수 있는 얘기 아니냐고. 그런데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할 것 같아. 처음에 일을 시작하면서는 그게 감사했어.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고 살았는지 봤기 때문에,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얼마나 우리 남매에게 사랑을 주고 기도로 키우셨는지 알기 때문에 이제 내가 그걸 갚을 수 있겠구나 싶었어. 그런데 이게 끝이 안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계속 부어야 해. 내가 돈을 벌어서 여행을 가고 싶으면 엄마에게 허락 아닌 허락을 받아야 해.
한 번은 대학원에 가고 싶었어. 교사가 된 직후에는 아무 공부도 하고 싶지 않았지. 공부하는 게 지겨웠으니까. 그런데 미술작품 쪽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몇 년 뒤에 미술관 교육과 관련된 공부가 하고 싶어 졌어. 그래서 엄마에게 대학원을 가겠다고 말했어. 그 날 엄마와 나는 대판 싸웠지. 요지는 내가 지금 그걸 할 상황이냐는 거야. 나는 자꾸만 억울해졌어. 처음에는 엄마도 내가 도와주는 걸 고맙게 생각하셨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당연해지더라고. 엄마는 또 엄마 나름대로 나한테 서운해해. 엄마가 돈을 허투루 쓰는 것도 아닌데 딸이 자꾸 치사하게 군다는 거야.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더라. 그래서 일을 하는 9년 동안 나는 계속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냥 나 혼자만 돌봐도 되는 곳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말이야.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을 것 같대. 겉보기에 밝은 성격이라서 그런가 봐. 그 사람들이 온 가족이 옥탑방에 사는 게 어떤 건지 알까? 공부를 하겠다고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까?
고등학교 때는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학원비가 30만 원이래. 엄마한테 얘기도 못했어. 우리 집에 그 돈이 없다는 걸 이미 알았으니까. 영어 성적이 너무 안 나와서 엄마한테 사정사정하며 5만 원짜리 박리다매식 대형학원 두 달 다닌 게 고등학교 시절 사교육의 전부였어. 덕분에 철은 일찍 들었던 것 같아.
돈이 다가 아니야. 그치만 어느 정도의 돈은 가정의 평화를 가져와.
대학생 때 실습을 했던 학교가 있었어. 학군이 좋지 않은 동네였어. 학군이 좋지 않다는 건 경제적인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고 부모님들도 일하시느라 바빠서 아이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내가 배정된 반의 절반 정도가 편부모 가정이었어. 교사 임용 합격 후 발령을 받은 학교는 학군이 좋았어. 학교 주변은 다 아파트고 맞벌이가 아닌 가정들도 많았어. 부모님 중 한 분만 벌어도 살기 괜찮았으니까 그랬을 거야. 얼핏 들어보면 부모님 직업이 사장님, 기장, 의사 등 사회적으로 봤을 때 좋은 직업들이었어. 그때 우리 반에 편부모 가정이 딱 하나 있었어. 그런데 사실 그것도 그 지역에서 흔한 경우는 아니었어. 나는 실습 때 학교 애들이 생각나서 좀 마음이 아프더라고. 자본주의의 현실과 그 모든 것과 별개로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크는 것이.
엄마의 전화를 힘없이 끊어. 일하러 가야 된다고 핑계를 대면서.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
‘결혼 진짜 잘해야겠다.’
엄마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렇게나 나에게 의지하는 이유는 ‘남편 역할의 부재’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으면 사실 그런 것들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의하고 극복해야 하는 문제인데 그게 안되니까 엄마에겐 내가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인 거지. 내가 엄마의 남편이자, 딸이자, 친구야. 근데 나도 이제 그게 힘들어. 이제는 좀 이기적이 돼 보고자 영국으로 왔는데 그것도 한 번에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