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영국 카페에서 일하기]

영어는 나에게 제2 외국어

by 현이진

(2018.9.)


나는 커피 맛을 좋아해. 내가 굳이 커피 ‘맛’이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디카페인 밖에 마시지 못해서야. 나보다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은 만나본 적 없을 정도로 카페인에 민감해. 관심 없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홍차, 콜라에도 카페인이 꽤 들어있기 때문에 나는 저녁에는 콜라도 잘 안 마시려고 해. 혹시나 확인하지 못하고 카페인이 들어있는 차를 저녁에 마시게 되면 그날은 심장이 두근거려서 밤을 꼴딱 새 버리는 거야. 이렇게나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인데 커피는 너무 맛있어. 특히 부드러운 우유 거품과 에스프레소의 조합, 카푸치노가 내 최애야.


영국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는 어느 커피전문점을 가도 디카페인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거였어. 한국에서 친구들과 만나면 보통 밥을 먹고 차를 마시잖아. 음료의 값이 비싸니까 내가 원하는 음료를 마시고 싶은데 웬만한 카페에서는 디카페인 커피를 팔지 않아. 그럼 물에 티백만 넣어주면 되는 허브티나 마시게 되는 거야. 요즘에는 그나마 여러 프랜차이즈들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시판하기 시작했지만 2년 전만 해도 스타벅스와 커피빈 밖에 없었어. 어쨌든 영국에서는 동네의 작은 카페에 가도 디카페인 커피는 다 마실 수 있어. 얼마나 신났는지 카페에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 심지어 맛도 있어. 한 번 한국 스타벅스에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셨다가 다 버린 적이 있거든. 우엑. 정말 탄 종잇물을 마시는 느낌이었어.


그런데 여기 베이스에 카페가 있어. 단체에서 운영하는 거지만 오픈되어 있어서 이 지역 사람들도 커피를 마시러 많이 와. 커피를 좋아했던 나는 영국에 오기 전부터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었어. 사실 한국에서는 기회가 없었거든. 대학생 때는 돈이 필요해서 알바를 했기 때문에 시간 대비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과외를 했고, 이후에는 바로 취직을 했기 때문에 카페 알바의 로망을 실현할 기회가 없었어. 내가 처음 맡았던 워크 듀티(Work Duty)는 주방과 호스피탈리티였기 때문에 나는 리더한테 어필을 했지. 카페에 자리가 나면 내가 꼭 하고 싶다고. 단체에서 운영하는 카페였기 때문에 거의 내부 사람들의 봉사로 이루어지고 있었거든.

하펜든 오벌카페

어느 날, 리더가 날 불렀어.

“너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잖아. 지금 자리가 났는데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이야. 할 수 있겠어?”

“응, 당연하지! 2시간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아.”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으로 카페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어. 솔직히 조금 걱정은 되었어. 내가 영어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영어로 주문을 받아야 하잖아.

카페 출근 첫날 옆에서 이것저것 가르쳐주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나는 카페가 처음이니까 음료를 만들지는 않지만 주문을 받는 법과 옆에서 보조하는 걸 익히는 것만으로도 뇌가 용량 초과가 되었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일을 했는데 3시가 넘어가면 주변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많이 오기 때문에 주문을 받는 내 앞에 사람들이 주욱 늘어서 있어. 그러면 마음이 조급해져. 그냥 침착하게 하면 되는데 한 사람이 베이커리류랑 커피와 차를 섞어서 4-5개 정도 말하고 나면 내가 카운터의 패드를 누르고 있는 건지 패드가 스스로 눌러지는 건지 모르겠어.


“영어는 저한테 제2 외국어예요. 그리고 오늘은 카페에서 저의 첫날이에요. 죄송하지만 조금만 천천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주문을 했는데 내가 라지 사이즈 라떼 말고는 뒤에 아무것도 못 알아 들어서 이렇게 말했어.

“오, 당연하죠. 괜찮아요. 첫날인데 지금까지 어때요?”

“이해해주어서 고마워요. 괜찮아요. 그냥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을 뿐이에요.”

이렇게 농담도 하면서 천천히 다시 주문을 받았어. 그렇게 한 차례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서 한숨을 돌리면서 스스로 뿌듯했어. 당황도 하고 긴장도 했지만 나이에 걸맞게(?) 잘 처리한 것 같고 큰 실수는 하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이 스무디를 시키면 조금 기대돼. 왜냐면 보통 컵에 담기는 양보다 많이 만들게 되는데 그러면 남은 것을 맛볼 수 있으니까. 이런 게 별거 아니지만 처음 하는 나에게는 모두 재미있고 흥미로운 요소들이었어.

한국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깨끗한 걸까? 한국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나갈 때 대부분 자기가 마신 음료들을 치우고 직원들도 수시로 테이블을 점검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 그냥 마신 것을 테이블 위에 두고 나가고, 직원들도 어지간히 한가하지 않은 이상 테이블을 치울 생각을 별로 하지 않지. 한국에서처럼 나만 테이블이 지저분하면 가서 빨리 치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

카페에서의 2시간은 평소에 하던 다른 일들보다 바빴지만 재미가 있었어. 같이 일한 동료들도 일을 빨리 배운다고 칭찬해줬어. 틈틈이 커피를 배워서 이 곳에서 떠나기 전, 내가 만든 커피를 마셔봐야지 하고 생각했어. 그 날 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카페데뷔#성공적 이라고 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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