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
새로운 미션빌더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편을 나누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미션빌더는 하펜든 공동체에서 소수였거든. 당시 5-6명이 전부였어. 그래서 항상 뉴페이스가 온다는 소식은 우리를 설레게 했어.
그 뉴페이스는 내가 오후에 주방에서 일할 때 도착했어. 까만 피부를 가진 그녀는 브라질에서 온 C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나에게 인사를 했어. 처음 봤는데 볼 뽀뽀를 양쪽으로 하는 바람에 나는 당황해서 약간 얼어붙었어.
‘아, 브라질에서는 이렇게 인사하는구나.’
며칠 뒤, 그녀는 봉사 스케줄을 받았고 나와 오전, 오후 같은 업무였어. 자연스레 우리는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아졌지.
C는 이 곳에 오기 전 브라질 IBM에서 몇 년간 일을 했대. 보수도 괜찮고 잘 나갔었나 봐. 그런데 어느 순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대. 돈은 많이 벌지만 일이 많았고 평생 똑같이 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니까 말이 통하는 포르투갈로 넘어갔대. 새로운 일자리와 기회를 찾으러.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나 봐. 10개월 동안 마땅한 일자리는 찾지 못하고 돈만 쓰다가 이곳을 알게 되어서 미션빌더를 신청해서 온 거야.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이 곳에서의 생활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어. 그리고 항상 자기는 40살이라고 강조하며 30대인 나에게 아직 젊다고 용기를 줬지. 우리는 주말에 같이 시내에서 밥도 먹고 꽤 친해졌어. 딱 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스케줄이 같아서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된다는 거였지.
하루는 식당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을 때였어. 휴지통에 쓰레기봉투가 필요해서 찾고 있었는데 예전에 쓰던 작은 봉투가 보이질 않는 거야. 그랬더니 C가 이걸 쓰라고 말했어. 그런데 그건 큰 휴지통에 사용하는 큰 쓰레기봉투였거든. 만약에 한국 사람이었다면 그냥 설명했을 거야. 여기에는 작은 쓰레기봉투를 사용하는데 지난번에 썼던 그게 없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날따라 나는 영어로 설명하기가 싫었나 봐. 말하기 귀찮아서 그냥 웃고 말았어. 그랬더니 그녀는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어.
“지난번에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이걸 사용했어. 이걸 써도 아무 문제가 없어. 넌 언제나 나를 비난해!”
나는 갑작스러운 공격성 발언에 어안이 벙벙했어.
“나는 너를 비난한 적 없어.”
“아니, 너는 항상 내가 하는 일을 비난해.”
그 자리에는 우리 말고 다른 스텝도 같이 있었어. 나는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어. 자기가 말한 대로 쓰레기봉투를 쓰지 않았다고 이렇게 다른 사람이 있는 앞에서 나한테 화낼 일인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관계가 틀어지면 힘들어. 나는 꽤나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이라 관계가 어려울 때 오는 타격이 더 크더라고. 그녀가 흥분한 것 같아서 그냥 자리를 피했는데 심장이 벌렁거렸어.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뭐가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지? 내 웃음이 그녀에겐 비웃음 같았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표정이 어두우니까 셰프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그녀에게 가서 얘기 좀 하자고 했지.
우리는 같이 밖으로 나와서 테이블에 앉았어.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너에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해. 사과할게. 그런데 나는 갑자기 네가 화를 내니까 너무 당황스러웠어. 나는 너를 비난한 적이 없어. 불만이 있다면 나에게 미리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너의 말들에 나도 상처를 받았어.”
손은 살짝 떨렸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교직에서 배운 ‘나 전달법’을 복기해가며 차근차근 말했어. 그녀도 조금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기 시작했어.
“너에게 화낸 건 미안해. 내 잘못이야. 우리는 너무 다른 것 같아. 성격도 문화도. 같이 일하면서 우리는 일을 너무 다르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예를 들어서 내가 설거지를 한 것을 너는 거품이 있다며 다시 씻었잖아. 브라질에서는 그렇게 안 해. 그건 다른 사람이 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거랑 똑같아.”
응? 그럼 거품이 있는 그릇을 눈으로 보고도 그냥 넘어가라는 얘기인가? 나는 정말 브라질에서 그렇게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다름을 인정했어.
“그래,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다른 부분들이 많지. 하지만 나는 그래도 너랑 불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 앞으로는 서로 조심하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하자.”
“응. 미안해. 나도 너랑 잘 지내고 싶어. 내가 좀 흥분하긴 했지만 나는 너를 좋아하고 평생 친구 하고 싶어.”
생각해보면 같이 일하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쌓인 게 많았던 것 같아. 나도 종종 C와의 일을 룸메에게 이야기하곤 했으니까. 그때는 왜 자기가 굳이 맡아서 많은 일들을 하면서 계속 한숨을 쉬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런 일을 겪고 보니 그녀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그런 것 같더라고. 그런 그녀에게는 내 반응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기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어쨌든 나중에 또 다른 두 명의 브라질 친구들이 설거지를 하며 더 헹구어라, 거품을 봐라 하며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니까 C가 말했던 ‘브라질에서는 그렇게 안 해.’라고 했던 건 그냥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였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