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의 첫걸음
제주는 언제나 나에게 설레는 곳이었어. 일단 야자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좀 설레기 시작해.
제주살이의 시작은 2년 전, 월정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스텝으로 한 달 살이를 시작했을 때였어. 당시 나는 교사를 그만두고 영국을 다녀와서 미국을 가려고 준비하던 때였지. 기간제 교사를 하며 바짝 돈을 모으고 있는데 방학이라 여행은 가고 싶고, 돈은 없고 해서 찾아낸 나름의 묘안이었지. 사실 처음에는 당시 34살인 나를 과연 게하에서 스탭으로 쓸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그때 게하 사장님은 몇몇 20대들의 책임감 없는 취소 연락에 지쳤는지 30대인 나를 뽑아주며 당부했어.
"꼭 오셔야 합니다."
두근거리며 처음 연락해본 곳으로부터 바로 '오케이' 사인을 받고 오히려 감지덕지하며 절대 가겠노라 약속했지.
나는 원래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이상하게 제주에서 계속 술을 마시게 되더라고. 우리는 파티 게하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내가 있던 게하는 홍보가 덜 되었는지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장기 투숙객이 몇 명 생기면서 그들과 하루가 다 가도록 즐겁게 놀았던 것 같아. 조금만 걸어 나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있으니까 낮에는 수영하고 밤에는 그곳에서 술을 마셨지.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과 말이야. 재수생, 대학생, 퇴사자, 승무원, 주변 가게 사장님들, 바이커, 백수, 기타 등등. 환경이 환경이니만큼 같이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자연스럽게 썸도 타고, 마치 <도시남녀의 사랑법>처럼 말이야.
여행지에서의 썸은 대게 그렇듯이, 그 당시에는 마치 운명적인 짝을 만난 것 같잖아. 게다가 여름밤의 제주라니 얼마나 낭만적이야? 한여름의 열기와 습기가 가득한 김녕 앞바다에서 밤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고백도 받았어. 다시 육지로 돌아가서 이 썰을 풀었을 때 나는 내가 넷플릭스가 된 줄 알았어. 다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듣더라고. '그 짧은 시간에 제주에 가서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하면서 말이야. 물론 막상 만나보니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어서 내가 미국으로 떠나며 금방 끝난 연애였지만, 제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추억 중의 일부가 된 건 사실이야.
정말 매일같이 놀아도 짧기만 했던 한 달이었지. 그때의 좋은 추억과 인연들 덕분에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제주에 진짜로 살아보고 싶어 졌어.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외국도 못 나갈뿐더러 외국 생활에도 지쳐서 좀 정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생각해보니 내 직업은 제주살이에 너무 적합했어. 제주에서 직장을 찾기가 어려워서, 창업을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부푼 꿈을 안고 내려왔다가 몇 년 안에 돌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어. 나는 육지에서 하던 기간제 교사 일을 그대로 제주에서 찾으면 되는 거였어. 이게 참 재밌는 게, 퇴직할 때는 그 교직이 너무 싫었는데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비정규직이 되고 보니 이제 좋은 걸 알겠더라고. 만약 내가 정규직 교사로 계속 있었다면 제주도에 오기 위해서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파견교사가 되어야 하고, 어느 학교로 갈지 알 수도 없어.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학교와 업무 등을 골라서 갈 수 있는 거야. 어느 정도의 불안정성을 감당할만하다면 나는 지금 이쪽이 훨씬 좋은 것 같더라고.
사실 독립도 너무 하고 싶었어. 내가 언제나 주변 동생들에게 하는 말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 건 29살까지가 최대이다.' 야. 머리가 커진 자식과 사고방식이 굳어진 부모님의 관계는 계속 같이 살았을 때 웬만하면 더 좋아지진 않더라고. 어쨌든 1년 살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올라오면 되니까. 실패하더라도 그 모든 경험은 내 자산이 되는 거잖아.
그렇게 나는 제주에 살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