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애비뉴엘 아트홀의 Double Edge 전시에 부쳐
전시 오프닝 파티를 끝내고
어제 오후 5시, 롯데 잠실 애비뉴엘 아트홀에서 성대한 오프닝 파티가 열렸습니다. 전시 제목은 양날의 검이란 뜻의 Double Edge입니다. 저는 롯데와 공동으로 이 전시의 기획을 맡았습니다. 한국 패션사의 두 거장인 앙드레 김과 이신우, 두 분의 이야기를 무대로 끌어내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이 전시의 커미셔너로, 두 사람을 선정하고 언뜻 머리 속에 정리되지 않는 두 분의 조합을 어떻게 끌어낼까? 고민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패션, 시대를 베는 칼
웨어러블(Wearable: 입을 수 있는)은 한 사회가 지향하는 미적 태도이자 동시에 시대, 지역, 성별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는 동태적 개념입니다. 패션 디자이너는 ‘웨어러블’의 의미를 해석하며 자신의 작업에 시대의 표정을 담지요. 패션 개념 조차 희박했던 60년대와 양장점의 시대 70년대를 넘어, 개인의 표현 욕구가 비등하던 809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사회에서는 패션의 브랜드화가 이뤄지고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디자이너들의 작업은 오늘날 K-패션의 발전을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오프닝 날 앙드레 김 선생님이 아끼셨던 패션모델 박영선 님께서 와주셨어요. 그 모습을 살짝 담았습니다.
따로 또 같이, 시대를 살다
앙드레 김과 이신우,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패션을 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남성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오직 한 벌의 옷’을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만드는 오트 쿠튀르를 지향한 반면 여성 디자이너인 이신우는 ‘아름다운 옷은 독점의 권리를 벗고 공유되어야 한다’는 패션의 민주화를 외치는 기성복의 옹호자였으니까요. 앙드레 김이 여성의 탐미적 세계를 고집스럽게 표현할 때, 이신우는 변화하는 남성성의 의미를 옷을 통해 확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에겐 공통점도 많습니다. 앙드레 김은 패션을 통해 문화외교의 선봉에 섰고, 이신우는 패션의 유럽중심주의와 싸우면서 그들을 배우려고 애썼습니다. 두 사람은 글로벌에 대항하는 로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의 전통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했던, 시대의 해석자들입니다.
자수, 실로 그린 그림
앙드레 김은 자신만의 시그너처가 된 자수의 디테일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자수는 전통적 기법을 넘어 현대적이고 미래적인 그래픽 아트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이 놀랍지요. 반면 이신우는 회화적인 접근을 통해 한국의 산하를, 그 미려하게 중첩된 자연의 풍광을 프린트로 남겼습니다. 두 사람 모두 패션 유관 단체들과 거리를 둔 채, 고독하게 자신의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외톨이와 고집쟁이 장인의 면모를 두 사람 모두 갖고 있었어요. 다만 그들이 풀어낸 옷의 세계가 달랐을 뿐입니다. 이들의 작품에는 이처럼 양날의 칼 Double-Edge로 잘라낸 동시대의 다른 표정과 방법론이 담겨 있습니다. 전통을 해석하는 법, 젠더를 해석하는 법, 디자이너의 자기 연출법 등 그들의 차이점은 8090 시대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는 맥락이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우리는 고리가 되어 넘을 것이다.
오프닝 파티에 이신우 선생님의 오랜 지인인 배우 김혜자 선생님이 오셨어요. 김혜자 선생님이 이번 전시를 위해 이신우 디자이너의 컬렉션 옷들을 많이 빌려주셨습니다. 전시를 위해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아요. 전시도 결국은 팀워크입니다. 이신우 선생님의 경우엔, 8090년대에 만든 실험적인 작품들이 유실된 상태이고, 찾기가 어려웠는데요. 타인이 소장한 옷을 역으로 추적해서 받아내야 했답니다. 이번 전시에서 콘셉트를 잡고, 무대를 구현하고, 옷의 스토리를 쓰는 일만큼, 유실된 옷을 찾기 위해 주소와 연락처를 알아내고 찾아뵙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만 이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신우 선생님은 항상 인사말로 "자신이 지금까지 옷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해준 팀들, 동료들 때문이라고, 그들에게 더 큰 축복을 보낸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전시는 롯데와의 공동기획으로 이뤄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디자이너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복원하는데 동참해주고, 기꺼이 자본을 투자해준 기업에게 감사합니다. 패션전시다운 무대를 만들어준 연원대표 공간 디자이너 김소연 선생님도 고맙고, 함께 전시를 준비하며 내부적으로 이 전시의 의미를 기업 구성원들에게 설득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전시에 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함께 내며 전시를 풀어준 성윤진, 이은애 두 큐레이터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결국 이 전시는 참여한 4명의 몫이며 최종의 의미는 관람자들이 가져가는 새로운 체험과 이해 속에서 완성되겠죠. 우리 4명은 이번 전시를 함께 디자인한 사람들입니다. 아니 저를 제외한 3명의 몫이 더 큽니다. 저는 이신우와 앙드레 김의 옷을 통해 이번 전시에 함께 해준 모든 이들이 서로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어, 패션계가 봉착한 정신의 벽을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함께 손을 잡아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앙! 판타스틱! 을 느껴라
우리가 이룬 것들이, 현재적 의미를 지니는 문제는 중요한 화두입니다. 패션처럼 쉽게 명멸하는 세계를 다루는 영역일수록 더욱 견고한 토대와, 우리만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패션전시는 패션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거는 일인 것은 당연합니다. 패션과 건축, 패션과 문학, 패션과 공학, 패션과 무용 등 지금껏 다양한 영역과의 결합과 제3의 의미를 타진하는 일이 제 주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웨어러블의 기준을 만들어낸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앞으로도 하나씩 해나가려고 합니다. 이번 Double Edge 전에서는 앙드레 김 선생님의 옷을 실제로 입어볼 수 있는 시착 프로모션 행사도 합니다. 옷은 머리 속으로 상상만 해서는 구체화되지 않습니다. 직접 입어보고, 거울 앞에서 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살펴봐야죠.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시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많은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앙드레 김 하면 그저 '앙 판타스틱'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가 온 생을 투자해 만든 옷을 한번씩은 보고 가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