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코마네치(3)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의 성공은 코마네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코마네치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은 정말 엄청났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오로지 체조에만 몰두해 왔던 14살의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었다. 올림픽 직 후 가진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마네치는 ‘맛있는 것을 실컷 먹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싶다’는 아주 소박한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녀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인터뷰였다.
설상가상으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은 코마네치를 마음껏 이용하며 유린했다. 각종 공산당 선전행사에 동원시켰고 서방세계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던 코마네치를 내세운 미국 투어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럼에도 그녀와 가족들에게 특별히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힘없는 어린 소녀는 점점 지쳐만 갔다.
너무 이른 나이에 목표한 모든 것을 이룬 코마네치. 목표로 했던 모든 것을 이뤄냈는데도 그녀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삶의 꿈을 잃었고 깊은 허무감에 젖어들었다. 루마니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오직 체조밖에 몰랐던 소녀에게 서방세계의 자유로운 모습은 너무나 충격이었고 자유가 없는 조국의 모습에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4년 후에 있을 모스크바 올림픽을 목표로 다시 훈련을 강행하려 하는 벨라 카롤리 코치와 코마네치는 크게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던 루마니아 체조연맹은 벨라 카롤리와 코마네치를 당분간 떼어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했다. 그녀는 훈련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수도인 부쿠레슈티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들었고 큰 충격에 빠졌다. 또한 자신을 오랫동안 통제하고 관리하던 벨라 카롤리 코치가 없는 삶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코마네치는 무절제한 생활과 폭식을 거듭하며 몸무게가 무려 10Kg 이상 불어났고 영양이 듬뿍 공급되자 성장도 가속화되어 키도 10cm 이상 자라났다. 이 키와 몸무게로는 더 이상 과거의 유연함을 보여줄 수 없었다. 체조 선수로서의 코마네치는 이제 마지막인 것처럼 보였다. 체조 외에 다른 삶의 목표가 없었던 그녀는 또다시 절망했다.
2년 후, 절망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벨라 카롤리가 찾아왔다. 루마니아 정부는 벨라 카롤리에게 세계 체조선수권대회에 나갈 루마니아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했고 이에 카롤리는 코마네치를 대표팀에 복귀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카롤리는 코마네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결국 그녀는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0Kg이 찌고 훌쩍 커버린 몸은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데 걸림돌이 됐다. 코마네치는 세계 체조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그쳤고 귀엽고 깜찍한 그녀를 기억하고 있던 서방 언론들은 몰라보게 성장한 그녀에게 혹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혹평들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코마네치는 이전처럼 묵묵히 훈련에만 몰두했고 마침내,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리는 1980년의 해가 밝았다.
코마네치가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예상은 처음엔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4년 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세계 체조 역사상 최초로 만점을 받았던 주 종목 이단평행봉에서 그녀는 봉에서 떨어지는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코마네치는 4년 전 금메달을 땄던 평균대에서 또다시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하며 금메달을 따냈고 자신이 상대적으로 약한 종목이었던 마루운동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코마네치는 개인종합과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추가, 이번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수확하며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제 요정이 아닌 진정한 체조 선수로서 다시 정상에 서게 된 것이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규탄하며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서방 국가들이 보이콧을 한 반쪽 대회였다. 이 때문에 코마네치의 재기 소식은 올림픽 생중계가 이루어지지 않은 서방 세계에 오히려 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서방 언론들은 앞 다투어 코마네치의 경기 화면을 방송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코마네치 신드롬이 일어났다. 차우셰스쿠 정권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코마네치는 다시 미국 투어를 해야 했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차우셰스쿠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pt0vnBsTqRs
그런데 체조 투어가 한창이던 1981년, 투어를 이끌던 벨라 카롤리 부부가 미국으로 망명하는 대형 사건이 터진다. 루마니아 체조의 상징과도 같았던 카롤리 부부의 망명은 냉전 체제가 공고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코마네치를 비롯한 루마니아 체조팀은 곧바로 루마니아로 송환되었다. 벨라 카롤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루마니아 체조대표팀 운영과 관련하여 체조 협회와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모든 실권을 빼앗길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벨라 카롤리 부부는 미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한 것이다.
차우셰스쿠 정권은 벨라 카롤리의 망명으로 가장 흔들릴 사람이 코마네치라고 판단, 그녀를 연금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 감시는 가족들에까지 확대되어 루마니아 정부는 그녀가 가족을 만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모든 국제대회에도 참가를 금지했다. 심지어 정부는 코마네치와 가족들에게 생필품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1984년, 그동안 세계대회와 올림픽에서 따낸 21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고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 광장에서 공식 은퇴했다. 세기의 연인이자 루마니아의 국민 영웅이었던 체조 요정의 슬픈 퇴장이었다.
은퇴 후 코마네치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았고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또다시 삶의 목표를 잃었다. 그런 코마네치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콘스탄틴 패니라는 이름의 루마니아 출신 미국인이었는데 그는 돈을 받고 동구권 여러 국가에서 서방 세계로 망명을 알선하는 브로커였다. 숨 막히는 감시와 통제, 도청과 미행 속에서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던 코마네치는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1989년 11월 어느 추운 밤, 이제 스물여덟 살이 된 왕년의 체조 요정은 목숨을 건 탈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