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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Mar 12. 2023

조금은 김 빠지는 샤말란 식 트롤리 딜레마 확장판

2023_14. 영화 <똑똑똑>

1.

 영화 <라스트 에어벤더>를 보며 '어휴, 저 양반 어쩌려고 저런대...'라고 생각했다. 영화 <애프터 어스>를 보며 '아휴, 저 양반 어쩌려고 또 저런대...'라고 생각했다. '샤말란 감독에게 기회가 더 남아있긴 할까' 생각한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2023년 현재, 이런 나의 의심을 비웃듯 그는 꾸준히 영화를 내고 있다. 그 영화들을 충격적일 정도로 망가졌던 두 영화와 비교해 보자면 나름대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매번 신선하고 창의적인 영화를 만드냐'는 논리적 비약을 통한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럭저럭 준수한 퀄리티의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위 '잘 나가는' 감독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제 몫을 하는 영화들을 연출하고 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똑똑똑>이 신선하고 창의적인 영화는 아니다. 근데, 무난하게 볼 수 있다.


2.

영화 <똑똑똑>

 숲 속 펜션에 휴양 차 머물고 있는 한 가족에게 의문의 인물 넷이 찾아온다. 그들은 곧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가족 중 한 명을 선택해서 희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똑똑똑>은 세상의 종말과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한 가족의 선택을 다루고 있다.


3.

 처음 줄거리를 봤을 때 생각한 것은 '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작품이구나'다. 그는 과거 영화 <해프닝>이나 <싸인>, <올드>와 같이 '알 수 없는 힘을 마주한 인간' 혹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다루곤 했다. <똑똑똑> 또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류의 종말'을 통해 '알 수 없는 힘을 마주한 인간'을 얘기하고 '인류와 가족'을 통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는 인간'을 다루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는 사실상 트롤리 딜레마의 확장판이다.


4.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

 트롤리 딜레마 다음으로 떠오른 모티브는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주인공 미셸이 하워드라는 인물에 의해 의문의 공간에 갇히고, 이를 탈출하기 위한 과정을 담은 영화다. 하워드는 미셸이 사고로 정신을 잃은 사이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지구가 오염되어 인간이 나갈 수 없는 곳이 되었고, 이 공간이 유일한 안전지대라고 이야기한다. 의문의 대상과 믿을 수 없는 거대한 현상에 대한 믿음과 의심을 놓고 보면 <똑똑똑>과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정확하게 대치된다.


 다만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에선 크게 차이가 있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전체적으로 스릴러 장르의 공식에 충실하다면 <똑똑똑>의 경우, 물론 스릴러 장르의 틀을 가지고 진행되지만 보다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고, 외부와 떨어져 광신도들의 위협을 받는 외지인들이라는 점에서 (억지로 연관을 지어보자면) 규모가 축소된 포크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5.

영화 <똑똑똑>

 종교적 색채는 영화를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메뚜기를 병 속에 가두는 웬을 극 시작에 배치하며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종교적 메타포를 보여준다. 웬은 레너드에게 에릭이 메뚜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메뚜기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열 가지 재앙 중 하나다. 메뚜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준 에릭이 자신을 희생함으로 재앙을 막는다는 것이 인상 깊다. 사실상 영화의 시작부터 재앙을 막기 위한 희생자를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가족을 찾아온 인물이 네 명인 것 또한 '묵시록의 4 기사'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각 상징하는 의미는 다르다. 역병, 기근, 전쟁, 죽음으로 상징되는 네 기사는 각각 치료사, 양육자, 악인, 인도자로 대치된다. 네 기사를 종말이 아닌 인생을 중심으로 재편한 것을 생각하면 흥미롭다. 감독은 이 네 명을 종말을 가져오는 사자가 아니라, 종말을 막기 위해 찾아온 선지자로 표현하려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

영화 <똑똑똑>

 주인공 가족은 게이 커플과 입양된 동양인 딸로 설정되어 있다. 에릭과 앤드류가 웬을 입양하러 갈 때에도 두 사람이 커플인 것을 숨긴다. 아마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 차별이 그들을 핍박했을 것이다. 그들은 레너드 일당이 자신들을 찾아온 이유도 소수자를 타깃으로 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세 가족이 스스로 희생해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은 사회를 구원해야 할 때, 이 셋이 직면한 트롤리 딜레마는 더 증폭된다. 이들이 희생하지 않아 인류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7.

 영화의 단점으로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지만 가장 극대화되는 지점은 극 후반부다. 세 가족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앤드류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윤리적인 행동을 하는데 사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답답하다. 


영화 <똑똑똑>

 특히 에릭이 자기희생으로 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맥 빠지는 감이 있다. 영화는 최종적으로 전체를 위한 개체의 희생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에릭이 늘어놓는 일장연설은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내 생각에 영화가 극을 이끌어온 동력은 '모호함'이다. 주인공 가족은 레너드 일행이 실제 종말을 막기 위해 찾아온 선지자인지, 소수자들을 타깃으로 한 사이비 종교 광신도인지 그 경계 속에서 의심을 반복한다. 또한 그들이 직면한 선택 또한 윤리적 모호함을 가진 난제다. 주인공 가족뿐만 아니라 관객 또한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극 말미 에릭의 대사로 인해 아무 의미 없어진다. 그는 심지어 레너드 일당 각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 직접 설명한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들이 직접 유추하며 즐길 수 있었던 재미 요소를 완벽하게 빼앗긴다. 지나친 친절은 간혹 독이 된다.


8.

 사실 이런 문제는 비단 <똑똑똑>만이 가진 문제가 아니다. 용두사미는 사실 샤말란 감독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단점이다. 다소 황당하지만 흥미로운 설정을 들이밀어 극을 잘 이끌어가다가 후반부가 되면 동력을 잃거나 지나치게 설명적인 태도로 변한다.


 영화를 매듭짓는 방식에서 나오는 단점을 떼놓고 본다면, 나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단점을 떼놓고 본다면'은 사실 아무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다. <똑똑똑>은 그 의미 없는 가정이 필요 없어지게 만들진 못했다. 언제쯤 이 단점이 개선될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샤말란 식 종말론을 기다리던 팬들이라면 극장을 찾을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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