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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Mar 15. 2023

'우리'와 '너와 나' 사이를 오가는 관계 속에서

2023_15. 영화 <소울메이트>

1.

 접속조사 '와'를 통해 이은 두 단어는 자칫 단순한 병치로 보일 수 있다. '와'는 앞, 뒤로 붙일 두 대상만 있다면 언제나 서로를 묶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마법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너와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동질감 내지는 소속감이 더 끈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너와 나'라는 말을 그저 단순히 단어의 병렬 배치 정도로 생각하면 조금 억울한 감이 있다. '나'가 빠져버린 '너와 ', 그리고 '너'가 빠져버린 '와 나'는 정확히 비문이다. '우리'만큼 강한 응집력은 아닐지 모르지만, '너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는 걸 함의한다. 그렇다고 '나와나'처럼 너무 가까이 붙어버려도 비문이 된다. '너와 나' 사이에 들어간 띄어쓰기는 그 공백만큼의 거리를 준다. 반면 '우리'는 '하나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다. 요컨대 '너와 나'에 들어간 공백은 '우리'에는 없는 관계 사이의 거리다.


2.

영화 <소울메이트>

 <소울메이트>는 미소와 하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제주도에 이사 온 미소가 처음 하은과 만난 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놓을 수 없는 (제목 그대로) 소울메이트가 된다. 두 사람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 겪으며 마침내 서로를 받아들인다. 결국 이 영화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멀어지고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다시말해 미소와 하은이 '우리'와 '너와 나' 사이를 오가는 과정이다.


영화 <소울메이트>

 두 사람 앞에 꽃길만 가득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곧 닥쳐올 일련의 사건들은 그들을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둘 뿐이던 세상에 진우라는 존재가 나타난 순간, 그리고 진우가 하은 몰래 미소에게 입 맞추던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기고, 멀리 떨어져 편지만 주고받게 되고, 환경이 달라져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그렇게 그 둘은 '우리'에서 '너와 나'가 된다.


 두 인물의 삶에서 서로가 없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타지에 살면서도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미소는 하은을 찾아가고, 비록 틀어진 사이라 할지라도 하은이 SNS로 미소를 찾아보고, 하은이 서울에 와 미소가 살던 집을 자취방으로 잡고, 하은이 자신의 아이를 보여주기 위해 다시 또 미소를 찾아가는, 두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갈구한다. 둘은 서로가 있음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너와 나'다.


 하은이 세상을 떠난 그 순간에도 미소는 하은의 딸과 함께한다. 하은이 남긴 또 다른 하은을 통해, 그렇게 미소와 하은은 다시 '우리'가 된다.


3.

 영화는 눈을 그리고 있는 연필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눈과 시야를 통해 많은 것을 담아낸다. 이 영화는 미소와 하은이 서로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은과 미소는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는 사이다. 하은을 좋아한다는 진우는 하은의 왼쪽 뺨에 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떤 점을 좋아하냐는 진우의 질문에 미소는 '눈', '눈물', '앞니'라는 정확한 키워드를 이야기한다. 하은을 전체로 뭉뚱그리지 않고 정확히 뜯어보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미소다.


 하은이 미소를 부러워했던 이유는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떠난 미소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지내지만 하은에게만큼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남고 싶은 모양이다. 서로 편지만 주고받은 5년 동안 두 눈으로 미소를 보지 못했던 하은에게 미소는 여전히 자유롭고, 시베리아 횡단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 그런 사람이다.


4.

영화 <소울메이트>

 온전히 바라보는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은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 사이 각자의 삶은 변했고, 서로 숨기는 것이 생기고, 계산하는 관계가 되었다. 식당에서 다툰 뒤 먼저 떠나는 미소를 하은이 따라나서지만 이때 두 사람의 시선은 과거의 그것이 아니다. 둘 사이를 가로막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다.


 진우가 술 취한 미소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날, 집 앞에서 하은을 만난다. 과거 5년 만에 두 사람이 재회한 날, 미소는 하은에게 웃으며 가슴을 보여달라고 하지만 이 날 미소는 속옷을 보이려는 하은의 풀린 셔츠 단추를 잠그며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이렇듯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균열은 이제 서로를 보는 시선마저 바꿔버렸다.


영화 <소울메이트>

 진우는 제주도로 내려와 하은에게 청혼한다. 두 사람은 같은 집에서 함께 살지만 여전히 진우는 하은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 진우는 하은이하고 싶었던 일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일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하은에게 '똑같이 그리는 것은 재주지 재능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쳐다보지도 않고, 뒤돌아서. 이 일 이후, 하은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봐주던 사람을 찾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떠난다. 미소가 얘기해 준 대로, 실눈을 뜨고, 태명이 '미소'인 아이를 미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5.

 하은은 상대방을 똑바로 보고 정확히 묘사하려 한다. 그리다 보면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과거 미소와 하은이 고양이를 그린 적이 있는데, 미소은 뜬금없이 분홍색 동그라미를 그리고 '고양이의 마음'을 그렸다고 한다. 아마 하은은 다른 사람이 그리지 않았던 마음을 그리는 미소를 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도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그림으로 바라보겠다고. 하은과 진우와 처음 대화한 날, 진우를 최대한 똑같이 그리며 보려 했던 것도 진우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다.


영화 <소울메이트>

 하은이 그리고 있던 미소의 얼굴 완성한 것은 하은이 아니라 미소다. 미소는 기본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 학원을 그만둔 사람이지만, 이때만큼은 정말 현실과 같이, 하은이 그리던 자신의 얼굴을 마무리한다. 과거 하은이 이야기했다. 그리다 보면 보인다고, 자신의 마음이, 그래서 최대한 똑같이 그려야 한다. 하은이 마음을 보기 위해 그렸던 것은 타인이었지만 미소는 자신의 얼굴을 극사실주의적으로 똑같이 그린다. 이는 미소가 하은의 방식을 통해 미소를 바라봄과 동시에 하은의 방식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다.


6.

 진우가 미소를 찾아왔을 때, 하은의 행방을 모른다며 꾸며냈던 말은 단순히 둘러대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ㅁㅅ' 이니셜을 통해 만든 귀고리를 공항에서 선물 받은 것, 하은이 떠나고 싶어 했던 대로 시베리아 횡단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 것. 그것은 단순히 진우에게 둘러대기 위해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미소가 자신의 얼굴을 그리며 봤던 마음속에 있었을 하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영화 <소울메이트>

 미소가 데리고 있는 아이의 이름은 하은이다. 미소는 딸을 데리고 하은의 그림이 걸린 전시회를 찾아가 하은의 그림을 순서대로 감상한다. 하은의 엄마, 진우, 함께 키운 고양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그린 미소의 얼굴. 미소는 생각한다. '이젠 네 얼굴을 그리고 싶어, 사랑 없이 그릴 수 없는 그림 말이야', 미소가 그릴 하은을 통해 미소는 어떤 마음을 볼 수 있을까.


 미소가 하은의 딸을 키운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하은과 똑같을 하나의 존재와 함께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미소가 그릴 그림은 하은의 딸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미소는 딸을 키우며 언제까지나 하은에 대한 생각을 할 것이다. 하은에 대한 마음을, 하은과 똑 닮은 딸을 언제까지나 바라볼 것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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