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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Feb 03. 2023

물과 모유, 그리고 기름

2023_08.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1.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물의 존재는 굉장히 중요하다. 물 없이는 3일밖에 생존할 수 없다 그러지 않는가. 그런고로 물은 생존과 관련된 영화라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필수 요소 중 하나다. 특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와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배경인 영화라면 그 중요도는 더 크게 부각된다. 이때, 물이라는 존재 하나만 떼놓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매드맥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액체들로 그 사고를 확장시켜 본다면 더 재밌게 영화를 감상을 할 수 있다.


2.

 극 중 등장하는 액체는 크게 세 가지, 물과 모유, 그리고 기름(여기서는 석유)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 세 소재는 생명을 대표하는 물과 모유, 죽음을 의미하는 기름 두 가지로 다시 나뉜다. 물과 모유는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나온 '살아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곳은 물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다. 모유는 어떠한가, 어머니의 몸에서 나와 그 몸에서 나온 새로운 생명을 먹여 살린다. 그런 점에서 물과 모유는 생명이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반면 기름은 어떠한가. 죽은 것으로부터 나온 '죽어있는 것'이다. 죽은 생명이 땅에 묻히고 그곳에서 석유가 된다. 산 사람은 석유가 필요하지 않다. 단지 무기체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 결국 죽음을 통해 만들어지고 생명과 관련 없는, 오히려 생명을 죽이는 움직임을 위해 사용된다. 이렇게 보면 기름은 죽음으로 대치된다.


 재밌는 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화에서 이 세 가지 액체를 묘사하는 방식은 이 물체의 속성과 전혀 반대되기 때문이다. 극 중 자연에서 흐르는 물은 묘사되지 않는다. 레버를 돌려, 다시 이야기하자면 기계를 움직여야 물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보급'된다. 어머니의 젖을 빠는 아기는 나오지 않는다. 거대한 착유기가 모유를 '생산'하고 있다. 반대로 기름은 기계, 즉 자동차를 움직이며 대부분(사실상 모든)의 사람들은 이 기계에 의지한다.


 인물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동차를 활용하는데, 죽은 시체로 만들어진 기름은 죽어있는 기계를 움직이게 하고, 살아 움직여야 할 물과 모유는 생산되고 보급되는 존재가 된다. 기본적인 질서가 파괴되어 있는 모습이다. 마치 기본적인 문명의 질서가 파괴된 영화의 배경과도 같다.


3.

 일종의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묘사되는 임모탄은 이 파괴된 질서를 기반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 그는 거대한 댐을 지어 물을 독점하고 여성의 몸을 착취해 모유를 생산하고 아이를 갖게 한다. 우리는 여기서 파괴된 질서의 한계를 만나게 된다. 죽은 것을 통해 산 것 위에 군림하려 하지만 죽은 것은 죽은 것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것은 산 것을 바탕으로 활용되어야만 그 이용가치가 있다. 결국 물이 나오는 땅은 생명이 사는 자연이며 모유가 나오는 것도 살아있는 여성의 신체다.


 이 근본적인 질서는 절대 깨뜨릴 수 없기 때문에 깰 수 없는 질서 위에 올라서려 한 임모탄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맥스와 퓨리오사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하는 것은 완벽하게 파괴된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허상(사이비, 즉 가짜 종교와 파괴된 것으로 눈속임된 질서)을 벗겨내고 근본적인 질서를 수면 위로 올려 보내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부한 이야기긴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밝혀지는 것 아니겠는가.


4.

 이 영화는 하나하나 전부 허상의 세계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듯 파괴된 것처럼 눈속임된 자연의 질서도 그렇고 임모탄이 만든 종교 또한 마찬가지다. 퓨리오사가 찾아 헤매던 녹색의 땅도 추억 속에만 남아있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를 소금 사막을 건너려고 한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허상'을 키워드로 이 영화를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성장을 이룬 인물은 바로 눅스다. 임모탄의 거짓에 휘둘려 자신이 발할라에 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충성하는 인물이다. 눅스는 임모탄이 거짓 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진실을 찾아 떠난다. 바로 주인공들과 함께 사라진 것처럼 눈속임된 질서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눅스가 기존에 했던 '기억할게'라는 대사와 죽기 직전 했던 '기억해 줘'라는 대사의 차이도 재밌게 다가온다. 거짓된 맹목으로 인한 죽음을 기억한다고 하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일까? 날 기억해 줘, 거짓된 세상을 깨고 뛰쳐나온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눅스의 말이 인상 깊었던 이유다.


5.

 이렇게 영화를 읽어본다면 <매드맥스>는 거짓과 허상을 깨우치고 질서와 진실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눈속임(CG)을 쓰지 않고 직접 차를 폭파시키고 스턴트 연기를 한 영화 제작 과정도 주제와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 그래픽 범벅인 요즘 블록버스터 영화 시장에서 이런 아날로그적인 촬영 방법은 오히려 신선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6.

 영화는 끝까지 건조한 색감을 유지한다. 당연하게도 상영관 내의 수분을 어떻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내내 입이 바싹 마르는 것 같은 건조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감독이 의도한 바가 그것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절박하다. 이 건조함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산 것, 즉 물과 모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관객이 주인공 일행을 응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주인공이 그 행동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시각적으로나마 그 건조함을 함께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것'을 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산 것을 위한 투쟁을 다룬 이 영화는 더욱 처절하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4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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