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에는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밤 늦게까지 떠날 짐을 싸고, 새벽에 운전해야 하는 남편을 깨워주기 위해 2시까지 깨어있었다. 2시 반, 아이들은 자다 깼음에도 불구하고 몹시 밝은 표정으로 집을 떠났고 나는 세시가 되서야 잠이 들었다.
화요일에는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열어 가진 식재료를 확인했다. 무 한개를 전부 채 썰어 무생채를 만들고 애호박 하나를 얇게 썰어 볶았다. 김치 볶음을 만들고 해초나물과 파래무침을 함께 올려 비빔밥을 먹었다.
수요일과 목요일, 금요일까지 똑같은 저녁밥을 먹었다. 금요일에는 금요일이라서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특별히 달걀푸롸이를 두 개 얹어서 먹었다.
토요일에는 남은 밥과 남은 김치와 남은 김칫국물을 모두 넣고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참치캔을 두 개 넣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하나만 넣었다. 장기 보존 가능한 식량은 아껴두는 것이 좋다. 세 번의 식사가 가능한 양이 나왔다. 달걀을 부칠까 잠시 생각하다가 귀찮으니 그만 뒀다. 오후 두 시반이 넘어 와구와구 점심을 먹었다. 짜...김칫국물은 반만 넣을 걸 그랬다.
어느 새 일요일이 되었다. 밥이 없으므로 쿠쿠를 시켜 밥을 해야하는데, 쌀 씻기가 너무너무너무 귀찮았다. 먹어야 살고 사는 게 먹는 것인데, 그 본능적이고 당연한 욕구를 채우기 위한 최소의 노력이 이토록 귀찮을 일인가 싶었다. 불현듯 최근 건강검진에서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가 높았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 밥을 하지 않으면 24시간안에 라면이나 과자를 먹게 된다. 운동을 하진 못할망정...느릿느릿 쌀을 씻었다. 일을 하느라 잠을 잘 자지 못했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꽤 아껴진다. 가족들이 떠난 집에서 나는 마치 처음부터 혼자 살았던 사람처럼 살고 있다.
바쁘게 흘러가는 매일매일 속에서 고독을 갈망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외로운 것이 마냥 괜찮은 것도 아니다. 편하고 홀가분하게 나의 사람들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혼자라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일 테다. 나는 매일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같은 길을 같은 공간을 오가며, 꿈 속을 달리고 빗 속을 걷듯이, 맑지만 뿌연 날들을 살고 있다. 적막 속에서 나는, 저 멀리 걸려있는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이렇게 컸던가, 냉장고의 얼음 떨어지는 소리가 이렇게 투박했던가 하고 생각한다. 밋밋하고 단순해진 삶에서 나는 생장도 광합성도 멈춘 식물처럼 같은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컴퓨터를 두들긴다. 고양이랑 사이가 좋았다면 오늘 나의 하루가 좀 더 활기찼을까. 그래도 배변실수는 용서못한다. 두고봐라, 결국엔 내가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