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집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캠핑장에 예약을 했다. 개인이 자신의 Ranch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라 물과 전기가 없었지만, 좀 떨어진 곳에 공용 수도가 있었고 우린 물과 화장실을 들고 다니니까 괜찮다. 입구에서 만난 주인아저씨가, 우리가 예약한 곳 말고도 빈 곳이 두 자리가 더 있다고 프라이빗한 다른 자리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다. 두 군데를 다 돌아보고,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안쪽 자리로 선택했다. 아늑하게 나무들로 둘러쌓인 곳에서 우리는 꾸물꾸물 텐트를 쳤다.
큰 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 호수가 있다고 해서 구경하러 갔다. 큰 언덕 아래 호수가 있었고, 호수 옆에 큰 공터에 200여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주인아저씨가 말씀하신 교회사람들인가보다. 다들 처음 보는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것 같은데 왜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까.
아보카도 오일과 맛소금으로 미리 재워둔 고기를 구워먹고 아이들과 스모어를 만들었다. 적당히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맥주를 꺼냈지만 오늘따라 왜 안땡기는 거지. 흥에 겨운 북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여기의 Quiet hours는 밤 11시부터라고 말하던 주인아저씨의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넓은 Ranch 어딘가에서 들개떼들이 사냥을 하는 건지 우루루 짖어댔다. 뒤이어 알아들을 수 없는 고성과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저분들도 사냥중인 걸까. 고작 집에서 한시간 운전해서 왔을 뿐인데 맑은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신비롭게 반짝였다. 느닷없이 와라락 짖어대는 걸 보니 들개들은 여전히 사냥 중인 모양이었다. 남편이 저거 사람소리냐고 물었다. 개소리가 아니었나?
여권을 집에 놔두고 온 꿈을 꿨다. 서둘러 움직이다가 가족과 떨어지고 휴대폰도 어딘가에 두고 와버린 것을 알아챘다. 공중전화를 쓰고 싶은데 하필 공중전화가 카드사용 전화였다. 동전 몇 개를 쥐고 곤란해 하자 앞에 있던 아가씨가 기꺼이 자신의 카드를 쓰라고 줬다. 내 뒤엔 편의점 앞에서 받은 4개의 전단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공중전화를 쓰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카드에 남은 천육십이원을 주인공들과 나눠써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기회는 한 번 뿐, 짧은 고민 끝에 내 번호로 전화를 걸자 낯선 목소리가 받았다. 안녕하세요, 그 휴대폰 주인인데요...북 치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도 나처럼 수면 부족이겠다.
우리는 최근에 텐트를 새로 샀는데, 현관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 텍사스에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