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미국의 텍사스주에 살고 있다.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The Texas Chain Saw Massacre, 1974)의 무대이자,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럴당 얼마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의 고향이다. 텍사스는 넓고, 덥다. 보통 4월 초에 에어컨을 켜서 10월 말쯤에 끈다. 로드트립을 갈 때면 주를 벗어나는 데만 하루를 보내야 한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땅을 가진 주이고(첫 번째는 알래스카),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진 주(첫 번째는 캘리포니아)이다. 텍사스 사람을 텍산(Texan)이라고 부른다. 석유와 소가 많다. 정말 많다.
둘째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은 텍사스뿐만 아니라 전미의 특수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받게 되는 공교육 서비스 중 하나이다. 주별로 행정적인 지원이나 프로그램이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텍사스 주 교육청 TEA(Texas Education Agency)에서 교육법을 제정하면 도시별로 꾸려져 있는 ISD(Independent School Education)에서 법을 집행하고 ISD산하의 학교와 학생들을 관리한다. 일반적으로 만 3세에서 만 5세의 아이들이 가는 어린이집을 프리스쿨(preschool)이라고 부르며, 만 4세가 넘으면 공립 프리스쿨(pre-K : pre-kindergarten)에 갈 수 있다. 만 5세가 되면 킨더가든(kindergarten)에, 그 이듬해에 드디어 1학년이 된다. 초등학교는 5학년까지 있고, 새로운 학년의 시작은 8월 중순이다.
당시 아이는 만 4세였고, 집 근처의 사립 프리스쿨을 다니고 있었다. 아이가 들어갈 특수 학급에 대한 안내서를 받은 게 생각이 났다. 아무렇게나 던져뒀던 종이 뭉치를 가져와 읽기 시작했다. 귀여운 삽화가 들어가 있는 한 장 짜리 팸플릿에 큼지막하게 프로그램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Independent School District - Special Education Department
Preschool Programs for Children with Disabilities(PPCD)
장애(disability)라는 글자가 맹렬하게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를 만난 모든 이들의 첫 숙제는, 장애라는 말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두어 번의 할큄으로 지나가는 말이라면 좋겠지만,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상처 받고의 가시 굴레는 제법 끈질기게 곁에 남는다. 가끔 우리의 머리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서, 돌아서서 외면하고 멀찍이 달아나기도 하지만 먼저 무너지는 것은 마음일 것이다. 무너진 마음은 무너진 대로 의미가 있다. 새로운 마음을 쌓기에 그보다도 좋은 일은 없지 않을까. 장애가 있건 없건 아이는 예쁘다. 웃어도 예쁘고 울어도 예쁜 내 아이의 장애. 원인은 몰라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도울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아이는 동그라미 세상에 태어난 작은 별 인지도 모른다. 낯선 뾰족한 모서리가 보기에 이상하고 찔리니 아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동그라미 나라에는 동그라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엔 타원도 있고 귀퉁이를 접은 네모도 있고 색깔만 같은 세모도 있다. 동그라미가 아니어도 괜찮다. 타고난 모양이 달라서 동그라미 세상을 배우고 익히는 데 동그라미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릴 뿐이다. 딱히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마음을 나누고 함께 웃는 것에 우리의 생김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고백하건대, 처음 검사날로부터 일 년이 지나도록 나는 우리 아이의 장애와 특수교육 시스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가득 받은 팸플릿들은 아이에게 지원되는 특수 교육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안내가 되어있었지만 내게는 그저 글자(심지어 영어)가 가득 적힌 종이 들일뿐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아이의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꽤나 벅찼던 날들이었다. 나는 매일 많은 시간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고 관련 도서를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맴은 끝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막막함과 조바심에 갈피를 못 잡던 시간들이 이었다. 눈 앞에 닥친 고통보다 아프게 나를 누르던 것은 가늠할 수 없는 아이의 미래였다. 이름 뒤에 장애라는 글자가 붙은 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에게 나는 어떻게 행복을 찾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