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종 Jan 12. 2018

세상의 혜안을 얻기 위해 달린 길

내가 세상을 달리는 이유, 나에게 남겨진 것들에 대하여


[미국 산악 마라톤 브랜드 Ultimate Direction 후원선수 및 홍보대사]



달리기를 시작하고 처음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건 2013년 군에서 전역한 후 2주 만의 일이다.

2달 후 42.195km 마라톤을 완주했고, 2달 후 100km 울트라마라톤에 완주했다.이듬해 철인 3종 경기와 200km 울트라마라톤, 100km 울트라마라톤 선수권, 브라질 아마존 정글 레이스 290km, 대한민국 종단 울트라마라톤 537km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영국, 러시아의 러닝 크루 활동과 국제 대회 출전 그리스, 크로아티아, 불가리아에서는 산악마라톤 브랜드 홍보차 촬영도 했다.

그렇게 전 세계 산악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2,200km를 달렸다.


외교부 청년공공외교 프로젝트, 신의주가 종착점인 날을 꿈꾸며 달린 대한민국 종단 537km 대회



달리기는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는 천식 보조기구에 의존하며 하루를 보냈다. 어렸을 적 운동에 취미도 재능도 없었고 좋아하는 것도 찾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와 삼수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천식 보조기구를 사용하며 공부하는 것이 버거워 1년간 새벽 수영을 시작하고 천식을 극복해 나갔다.

대학교에 입학해 1년을 보내고, 군입대를 위해 체력검정을 준비했다.




특전사 병으로 보낸 군생활



타인에게 어떻게 규정될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 달리기는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군 생활 간 고된 훈련과 생활에서 오는 피로를 달리기로 풀기 시작했다. 처음 10km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하다가 20km, 30km로 점차 늘려갔다. 마라톤 대회에 한 번도 출전해보지 않았음에도 42.195km 완주에 자신이 있을 정도의 체력이 만들어졌다. 체력적으로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매일같이 달리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달리기를 통해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법을 배워갔다.




아마존 강을 횡단하던 날



전역 후 전 세계를 달리며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회에서 800km 이상 완주 경험으로 새로운 환경과 세상의 레이스를 꿈꾸기 시작했다. 많은 대회에 참가했지만, 26살 가을 브라질 아마존을 횡단하기 위해 준비해 달렸던 기억과 시간은 아직도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마존 정글을 달리는 남자의 사진 한 장을 보고 밤 잠을 설쳤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여건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저만치 멀어졌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는 주변 친구들을 뒤로 한채 온전히 브라질에 출국해

아마존을 달리는 나의 모습만 상상했다.

당시는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쳐가던 시점이었다. 현실적인 여건은 쉽지 않았다.

대회 참가 비용 8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받았던 장학금을 모두 쏟아부었고, 기업과 장학 재단에 후원 제안서를 만들어 여비를 마련했다.




브라질 아마존의 관문도시, 북부 산타렘



32시간 4번의 비행 끝에 아마존의 관문도시인 산타렘에 도착했다. 전 세계 19개국 81명의 참가자들이 선수 등록을 했다. 작가, 기자, 항공정비사, 다큐멘터리 감독, 지질학 연구가, 울트라마라톤 선수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살아온 이들과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영국, 과달루프, 벨기에, 미국 선수단과 함께



선수들과 함께 16시간 동안 아마존으로 향하는 배에 탔다. 5박 7일간 290km를 달리며 매구 간 아마존 강을 수영해 건너며 식량, 의복, 구급 도구, 생존 키트, 나침반을 들고 정해진 구간을 달렸다. 아마존에서 각종 늪지대, 벌레, 뱀, 아나콘다, 재규어 등 극한 환경에서 레이스가 진행되었다. 아마존의 살아있는 환경과 습한 기후에서 매일과 같이 레이스가 진행되었고 스콜이 쏟아져 내려 저체온증으로 선수들이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눈이 안 보이는 경우도 있었고, 혼미해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강을 건널 때마다 악어나 피라니아가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아직 발견이 안된 원주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브라질 아마존 정글 레이스를 마치고



브라질 아마존에 돌아온 후, 나의 미래에 대해 새롭게 규정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전히 나의 결정과 의지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정답은 내가 결정한 것에 있었다.

달리기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미래와 인생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 몬데빌 산악 울트라마라톤 91km를 달린 날.




남미에서 돌아온 지 3개월 채 되지 않아 전공인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위해 일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파리로 떠났다. 타국, 타지에서 1년 간 쉽지 않은 생활과 시간이었지만 매일 아침 파리 시내를 달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올 때마다 나를 스스로 지키는 법과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법도 터득했다.






길 위에서 길을 묻다, 16일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날



세상에 대한 혜안을 얻기 위해 달린 길 위에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 것인지, 또 어떻게 죽을 것인지. 달리는 동안 온몸의 신경과 세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순간에도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했다.

 



정장과 구두를 기부하기 위해 영국, 국내를 달린  울트라마라톤 192.195km




성공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졌다.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규정된 성공이 아닌, 내가 죽음 앞에 섰을 때 얼마나 성공한 삶을 살았을지.

타인의 인생을 살지 않고,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성공의 의미가 나에게 다가왔다. 위험을 감수하고 내가 지금까지 행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평생지기인 달리기와 함께 앞으로 달려갈 날들과 세상을 기대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내일은 또 어떤 멋진 일들이 펼쳐질까?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