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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Aug 14. 2019

더딘 사회적응, 기다리니 됩디다


저는 기질적으로 완고하고 민감하며 적응성이 낮습니다. 감정의 강도가 강하고 활동성 수준이 높습니다. 굉장히 규칙적이고 처음 보는 것에는 우선 뛰어듭니다. 제 아들은 저와 기질적으로 굉장히 유사합니다. 대부분 유사하고, 첫 반응만 다른 양상입니다. 제 아들은 처음 보는 활동, 사람, 음식, 상황 앞에서 굉장히 신중합니다. 첫 반응에서 기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10개월 무렵에 처음으로 엄마와 아기가 함께 하는 문화센터 수업을 갔을 때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2년 동안이나 일어났습니다. 아기의 관심을 끌만한 활동 등에는 집중하다가 갑자기 새로운 대형으로 앉거나 동물 복장과 같은 치장을 할 때면 아들이 수업 장을 이탈하는 겁니다.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가 어떻게 그런 변별력과 발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타고났기에 그렇다고 할 수밖에요), 몇 번을 데려다 앉혀 놓기를 반복하다가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냥 뒀습니다.    


<유일하게 복장 착용을 거부하는 자, 예민한 아들>

커갈수록 이 점은 도드라졌습니다. 아들은 확실히 일관되게 독특한 복장 착용을 거부했고, 단체로 하는 낯선 이불 펄럭이기 활동은 무리 밖으로 나와 관찰을 했습니다. 펄럭 거리는 이불 안으로 까르르 거리며 들어가는 아이들 모습이 재미나 보였는지 그때서야 참여했습니다. 

사실 그때 난처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처음이 아니라 2년을 반복한 일이기에 화가 솟구쳤습니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염려보다도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어디가 모자라니?’라는 저 자신의 심약함과 속 좁음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아닌 매주 장기간에 걸쳐 만나는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활동을 할 때마다 거부하는 모습은 민감함과는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그저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아들 곁에서 재미있어하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읽어 주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수업을 마치고, 한 아이 엄마가 저에게 “덕분에 아이를 기다려주는 법을 배웠어요”라고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아이도 처음 보는 활동에는 참여를 하지 않는데, 그때마다 다그쳤다며. 그런데 저는 아이를 그냥 기다려 주었다고, 자신도 그렇게 해보니 아이가 새로운 활동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때 제 속은 정말로 아이의 멱살을 잡고 다그치고 싶을 정도였는데요.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결과 뜻하지 않게 감사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내 아이만 남들은 다 적응하는 수업에 적응을 못하는 모자란 아이는 아니구나’라는 안심과 아이의 행동에는 자신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우리의 아이들은 첫 반응에 ‘멈추는’ 기질에 속합니다.    


<유치원 5세 운동회, 복장 착용&단체 무용, 표정은... 안 울고 했으니 충분하다>

아들이 유아였을 때는 첫 반응에서 멈추는 기질에 비교적 관대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나이로 7세인 아들은 유치원 외에도 다양한 수업에 참여하며 사회생활을 넓혀 가는 때인데요. 민감함과 멈추는 기질이 콜라보를 이루며 다양하고도 사소한 이유로 다른 아이들은 문제없이 해나가는 활동을 거부하거나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서 속상한 날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아들은 활달하고 외향적인 아이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 지금은 그 아이들이 하는 일은 다 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아는 어른을 보고 엄마 뒤에 숨지도 않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운동회에서는 단체 복장을 착용하고 춤도 췄습니다. 편안해 질때까지 기다려주면 될 것을 괜히 엄마 체면치레 때문에 조바심을 냈던 것 같습니다.


5세 때 처음으로 간 유치원에서 가을에 운동회를 했습니다. 춤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복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입장을 하는 순간, 아들이 친구들 속에서 똑같이 복장을 하고 등장을 해서는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아들도 옷을 갈아 입을 때 울지 않았노라며 자랑스럽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 치킨 파티로 자축했습니다. 아이들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르듯, 사회생활 적응도 속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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