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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Aug 28. 2019

대변 미스터리, 그래서 어떻게 도울 것인가

“똥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누거라. 

일주일만 억지로 해보면 

평생 배 속이 편하고 밖에 나가 창피당하는 일이 없다." 


2000년 대 초반에 온라인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한미은행장이 아들에게 쓴 편지’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은 장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하는 수 십 가지의 인생 교훈입니다. 그 많은 교훈 중 저는 유독 저 구절이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저 또한 민감한 기질을 타고 난데다 대변 루틴에 관한 한 뼈아픈 경험을 꽤나 했습니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변비로 실신을 하였고, 아침부터 밤까지 정규수업과 자율학습까지 있는 고등학교 때에는 학교에 있는 시간에나 변의가 오는데 공중화장실에서는 대변을 보지를 못하니 변비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감한 아이가 아니라도 초등학교 1학년생 중에는 변비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생활패턴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저는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요, 실신을 하도록 변비가 될 때까지 그 불편을 누구에게도 마음 놓고 토로하 지를 못 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장시간을 고통에 시달려도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주는 어른도 없었고, 오히려 변 하나도 제대로 못 본다고 혼나지나 않을까 하는 수치심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었습니다.    


배변을 관리해야 할 생활습관의 대상으로 꼽은 한미은행장님의 지혜는 그런 과거를 가진 저에게는 ‘유레카’라고 외칠만한 대단한 발견이자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들마저 저의 민감함과 대변 장소 가리기를 닮았기에 더더욱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들을 집 밖에서 변을 보게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만으로 꽉 찬 6세가 돼가는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밖에서도 대변을 볼 수 있다는 동화책을 읽어줘도 봤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친구 집에서 잘 놀다가도 갑자기 집에 가자고 하면 대변이 보고 싶다는 뜻이었고 조용히 놀이를 파하고 집에 왔습니다. 친구를 초대해서 장시간을 놀다가 친구는 언제 가냐고 물으면, 친구 엄마에게 “아이가 대변에 예민한 편인데 지금 화장실이 급한 것 같아요.”라고 귀띔했습니다. 그것을 이해 못하는 엄마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다행한 것은 특별히 어디가 아프지 않은 이상, 먹는 양이 일정한 아들의 배변 간격이 하루에 한 번으로 일정했다는 점입니다. 이 타이밍을 하루가 시작되는 이른 아침으로 고정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들은 집이 아닌 곳에서는 스스로가 대변을 참았기에 주로 외출하고 돌아온 늦은 오후나 저녁에 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문제 될 일이 많지 않았지만 장거리 외출에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아들은 기차 타기를 좋아했는데, 저희는 주로 기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본가나 일가친척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기차를 타기 하루 전부터 아들에게 미리 변을 보도록 유도합니다. 아들에게 가장 잘 통했던 설득은 ‘똥방귀 범인 추적’이었습니다. “똥을 참고 기차를 탔는데 똥방귀가 나오면 꽉 막힌 기차 안에 방귀 냄새가 가득할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그 냄새를 따라 킁킁킁 찾아오겠지. 그러면 네가 꼈다는 걸 알게 될 거야”라는 다소 과장된 미래예측이었습니다. 아들은 그런 상황이 굉장히 싫었는지 대개는 출발 전에 어떻게든 대변을 보았습니다.     


아들이 대변 참기로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은 명절이었습니다. 명절 연휴는 대개 3~5일로 그 기간 동안 두 조부모님과 몇몇 일가친척 댁을 방문하며 장소를 계속 바꾸니 아이는 연신 대변을 참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변을 참는 일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세 돌 무렵에는 3~4일을 모두 참았다면, 다음 해에는 2~3일, 지금은 1일 정도로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끔 변을 수 일 참는다고 해서 큰 병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것을 까다롭다고 핀잔을 주는 이도 없으니 참 다행이었습니다.    


만 3세가 넘어 유치원에 입학한 후로도 아들은 밖에서 변을 보지 않음에도 바지에 실수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만 4세가 넘은, 우리 나이가 6세가 된 봄이었습니다. 5시에 마치던 유치원을 1시 30분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하원 후 집에 와서 대변을 볼 시간에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던 아들이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합니다. 아이 걸음으로 3분 이상은 걸어야 하는 화장실에를 급히 데려갔는데 소변기에 서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겁니다. 굉장히 급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대변을 참고 있느라 소변도 못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좀 있으니 약간의 소변을 보고 바지를 올리는 아들.     


그런데 그 후 걸음걸이가 이상합니다. 놀이터에서 다시 화장실로 데려가 보니 맙소사! 바지에 대변이 나와 있었습니다. 아들의 손을 보니 손에도 변이 묻어 있습니다. 아들은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라 진짜로 변이 나온 건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확인을 해 본 듯했습니다. 화장실에서 급히 뒤처리를 하고 나니 아들은 집에 가기를 서두릅니다. 아이는 이미 그것이 친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상황임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른 봄, 바람이 심한 날이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동안 아들은 옷에 묻은 변 느낌 때문에 어그적 어그적 걸을 뿐 냄새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당황하거나 수치스럽지 않도록 대변이 밀려 나온 상황과 그럴 수도 있다는 위로, 친구 중에 눈치챈 이가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는 수다를 떨며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오니 묻은 양만으로도 그 냄새가 꽤나 강했습니다. 아들도 충격이 큰 표정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한 후로 아들은 드디어 밖에서 대변이 너무 급할 때는 공중화장실에서 변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주 급할 때 만이라서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중화장실에서 변을 본 것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힙니다만, 바지에 실수를 한 적은 없습니다.     


현재 아들은 여전히 하원 후 오후에 대변을 봅니다. 드디어 조부모님들 집에 가면 당일에도 대변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점점 스스로도 자신의 대변 습관을 자신 삶의 일부로 무리 없이 수용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크면 점차 변하는 자신의 생활에 맞게 배변 습관을 조절할 수도 있겠지요? 한미은행장님의 교훈처럼 말입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방해만 없으면 알아서 잘 자란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이의 타고난 특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반하는 일방적인 어른의 기대를 강요하지 않으면 아이는 잘 자란다 라고. 이 까다로운 화장실 가리기도 인정해 주어야 할 타고난 특징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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