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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Sep 05. 2019

유아식 죽 맛 살리는 한끝

아이 입맛에 맞게 이런저런 식사를 준비해주는 엄마의 노력에 대해 반드시 “엄마가 아이 입맛을 까다롭게 하네. 나중에 장가가면 아내에게 구박받는다.”라고 잔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에 의하면, 입맛이 까다로운, 즉 후각과 미각이 민감한 아이들은 생애 첫 음식에 대한 기분 좋은 출발이 오히려 편식을 막고 새로운 음식도 두루두루 먹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관찰한 ‘예민하다’, ‘민감하다’는 ‘경계심이 높다’와 같았습니다. 처음 보고 겪는 사람・환경・상황・물건 등에 대해서 심사숙고하는 겁니다. 처음 접한 것들이 불쾌하거나 불편하지 않으면 다음에 그것을 접할 때 경계심이 낮아지고, 기분 좋게 반복하다 보면 그것에 편안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민감한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든 첫인상이 중요하고 그것을 기분 좋게 반복하는 것이 예민함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어보지 못한 거라 피하고 싶은데 먹어보니 맛나고 그래서 또 먹고 싶다는 좋은 기분이 드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들은 평균 체중으로 태어났지만 자랄수록 체중이나 키가 작은 편에 속했습니다. 물론 저희 부부가 키가 큰 편이 아니기에 유전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가 작으면 아무래도 먹이는 일에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최대한 아이 입맛에 맞게 식사를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현재 우리 나이로 7세인 아들은 채소가 단독인 나물반찬은 좋아하지 않지만, 연근・우엉조림을 좋아하고, 온갖 채소가 다 들어간 김밥, 카레, 볶음밥, 탕 류 등을 잘 먹습니다. 어른들이 선호하는 북엇국이나 순대국밥 등 고깃국 종류도 즐깁니다. 회나 초밥도 즐기고, 구운 고기도 잘 먹습니다. 즉, 취향이 뚜렷할 뿐 거의 편식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음식을 먹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유에 익숙한 아이에게 미음을 먹이기란 그저 맛만 보이자 정도였고, 수유가 끝난 첫돌 이후로는 죽과 분유를 병행해서 먹였습니다. 마시는 액체류가 아닌 고형 음식 적응에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다양한 재료를 다져서 이렇게 저렇게 죽을 만들어 줘도 잘 먹지 않던 아이가 친정어머니가 만든 죽들은 잘 먹었습니다. 그 방법을 소개합니다.    


이유식으로 시작하는 유아식은 쌀알을 곱게 간 죽부터 덜 간 죽, 통 쌀죽 등 죽이 기본입니다. 월령이 높아질수록 쌀알이 굵어집니다. 먹을 수 있는 게 죽 밖에 없는데, 맛의 변화가 거의 없는 아까 먹고 또 먹는 것 같은 죽을 주면 미각이 민감한 유아라면 열에 아홉은 먹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1. 다양한 육수 구비

북어머리 육수, 멸치 육수, 채소 육수 등 틈틈이 다양한 육수를 충분히 만들어 여분을 냉동실에 얼려 보관합니다. 육수를 만들 때 양파와 대파를 많이 사용하면 자연스러운 단맛을 가미할 수 있습니다. 육수에 따라 죽의 맛이 크게 달라지므로 아침에는 북엇국 맛 죽, 점심에는 멸칫국맛 죽 등 먹는 아이가 쉽게 질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약한불에서 참기름에 불린 쌀알을 볶은 후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죽을 쑤어라    

참기름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는 160~170℃입니다. 그 이상의 온도에서 장시간 가열하면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하지요. 낮은 불에서 불린 쌀, 간 쇠고기 등에 참기름을 넣고 달달달 볶습니다. 쌀알이 약간 투명해질 정도, 잘게 간 쇠고기가 붉은 부분 없이 겉면이 모두 익을 때까지 볶으면 되는데, 아주 잠깐이므로 참기름이 탈 정도까지 온도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이때 약간의 소금도 쳐 줍니다. 그러면 쇠고기의 누린내도 잡힙니다.    


그리고 재료들이 잠길 정도로 약간의 물을 붓습니다. 바닥에 전분기가 눌어붙지 않게 젓습니다. 쌀알이 물을 다 흡수하면 다시 또 물을 약간 붓고 젓습니다. 이런 식으로 쌀알이 완전히 퍼질 때까지 물 붓고 젓고를 반복하면 탱글탱글한 식감이 살아있는 죽이 완성됩니다


아들이 현재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죽의 조합은 쌀+쇠고기+양파+감자+참기름+소금+깨입니다. 지금도 환절기와 같이 입맛을 잃는 시기에는 이 죽을 끓이곤 합니다. 방법은 같습니다. 참기름에 불린 쌀, 잘게 다진 쇠고기・양파・감자를 볶다가 물을 첨가해가며 뭉글하게 끓입니다.     


처음부터 재료에 물을 한껏 붓고 죽을 쑤면 쌀알이 푹 퍼집니다. 탱글탱글한 식감이 없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미각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큰 차이입니다. 참기름으로 코팅된 다른 재료들도 풍미가 깊어집니다. 쇠고기와 참기름의 고소함에 쌀의 은근한 단맛, 이들을 아우르는 소금의 짠맛의 조합 덕분에 여기에 양파, 감자, 당근, 애호박 등 어떤 채소를 넣어도 맛있습니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에게도 채소를 먹일 수 있습니다.     


단, 파프리카와 브로커리는 생각보다 향이 강합니다. 파프리카는 모든 재료를 압도할 만큼 향이 강하므로 꼭 넣고 싶다면 제일 마지막에 넣고 불을 끈 후 남은 열로 익힙니다. 브로커리는 풋내가 강해서 한 번 데친 후 잘게 잘라 쓰시기를 권유합니다. 제 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리가 들어간 음식은 즐기지 않았습니다.    


3. 구원투수 찹쌀, 이왕이면 햅쌀・갓 도정한 쌀

식감을 즐기는 아이라면 찹쌀을 이용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찹쌀은 끈기가 강합니다. 멥쌀보다 거칠지 않아 부드럽습니다. 햅쌀이나 갓 도정한 쌀은 비교적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단맛도 강합니다. 밥맛은 결국 쌀이 좌우합니다. 신선한 쌀일수록 미각이 민감한 아이에게는 맛있습니다. 협동조합과 같이 그때 그때 생산한 농식품을 파는 곳을 이용하면 확실히 밥이나 죽 맛이 낫습니다. 도정이나 보관 일자가 한참 지나서 1+1으로 세일하는 쌀과 비교해 보시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밥 식을 하기 전까지는 대략 첫 돌 무렵입니다. 출산 후 몸도 덜 회복된 상태로, 안아 키워야 하는 아기에다, 온갖 재료를 다져야 하는 이유식은 정말로 고된 노동 중 하나입니다. 각종 재료를 다져 냉동건조 개별 포장해서 파는 쉽게 만들 수 있는 이유식 재료들도 있습니다. 아이 입맛에 맞는 제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각종 채소를 잘게 다져 냉동고 얼음 트레이에 얼려놓고 이용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아들은 냉동실에 보관된 채소로 만든 이유식은 먹지 않아서 결국 다진 노동시간만 아까웠습니다. 그 정도로 민감한 미각을 지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불린 쌀, 대충 자른 재료들을 물을 붓고 끓이고 ‘도깨비방망이’와 같은 믹서로 휘리릭 갈아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니면 재료도 다지고 끓여도 주는 기계도 있습니다. 이 모든 편리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아들은 그때 그때 재료를 다지고, 물을 조금씩 부어 뭉글하게 끓이고, 재료별로 적기에 투입하여 조리한 이유식을 용케도 알아내서는 제일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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