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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Sep 19. 2019

예민한 아이 푹 재우기 _ 철권처럼 K.O.

예민한 아이 난제, 수면(2)

아이가 푹, 오래 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선은 아이의 성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하거니와 그래야 엄마도 충분히 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많이 사준다면 잠에 더하여 자유시간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민한 아이들을 푹, 오래 재우기 위해서는 노오력이 필요합니다.


<철권 7 / 출처 : 블로그 악랄 가츠의 리얼 로그>


'철권‘을 아십니까?

오락실이 있던 시절, 동전을 넣고 스틱을 움직이며 상대 선수와 격투 겨루기를 하는 아케이드 게임입니다. 마주 선 각 선수의 머리 위에는 옆으로 긴 막대기가 있습니다. 선수의 생체 에너지 수준을 나타냅니다. 타격을 당할 때마다 막대기의 색이 없어지기에 에너지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모두 없어지면 KnockOut, 완전히 뻗고 게임은 끝입니다. 우리의 예민한 아이들의 ‘꿀잠’은 마치 자신의 신체 에너지가 바닥나야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임무는 주간 생활 동안 아이의 에너지를 바닥내고 K.O. 를 시키는 겁니다.    


아기들은 많이 잡니다. 특히 신생아들은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잡니다. 예민하게 태어났어도 자기는 잡니다. 다만 통잠의 시기가 더디 오고, 잠귀가 밝고, 불빛에 민감하고, 흔히들 안고 재워 바닥에 눕히면 등이 엄마 품이 아닌 걸 알아차리고 아기가 운다고 하는 ‘등 센서’가 예민해서 자주 깰 뿐 자기는 잡니다.     

성장할수록 아기들의 잠은 줄어듭니다. 두 돌 무렵이 되면 낮잠이 2~3회 정도로 줄고, 세 돌까지 1회, 만 3~4세까지도 낮잠을 재우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꽤 있습니다. 월령별로 낮잠은 몇 시간과 같은 규칙은 없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봐서 피로해하면 재우면 됩니다.     


그런데 제 아들은 30개월 무렵부터 낮잠을 자면 밤에 일찍 잠들지 못하고 더 늦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놀다가 하필 오후 5시쯤이면 피로한 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데 그때 잠이 들면 자정이 넘어야 취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졸음이 오면, 평소 제한 배식하던 초콜릿이나 젤리를 마음껏 먹게 하고 TV로 만화영화를 보여주며 억지로 깨어 있게 하다, 밤 8시쯤 재웠습니다. 그때서야 아들은 대략 10~11시간 정도를 밤새도록 잤습니다. 더 이상 낮잠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되자 아들의 낮잠과 밤잠의 상관관계는 마치, 하루 중 자야 할 시간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낮에 밤잠에서 ‘당겨’ 잤다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밤새도록 통잠을 잔다고 해서 그게 바로 ‘꿀잠’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이 다 잠들고 난 후에도 혼자 잠들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잠들기를 기다렸습니다. 특히나 잠들지 못하는 자의식에 집중될수록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잠들어 있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가장 잘 잤던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고, 흡사 TV가 까만 화면이 되면서 꺼졌다가 일순간 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꿈도, 잠들지 못하고 공상과 망상을 반복한 기억도 없이 전원이 꺼졌다 켜지는 것 같은 신기한 ‘꿀잠’ 체험이었습니다.    


그날은 처음으로 롤러스케이트를 탔던 날이었습니다. 온몸의 균형이 잡혀야만 신발 밑에 달린 바퀴를 통제할 수 있는 꽤나 어려운 신체활동이었습니다.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노력한 끝에 롤러스케이트를 쭉쭉 밀고 나가는데 꼬박 하루를 썼습니다. 그날 밤 저는 베개를 베자마자 곯아떨어졌고 다음 날 코피를 쏟으며 잠에서 깼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언제 잠들었는지, 잠은 잤는지도 모를 정도로 베개를 베고 누운 때로부터 기상하기 전까지의 테이프가 싹둑 잘려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 후에는 고3 때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쭉 공부를 했던 일과의 경우에도 매일 밤, 잠이 잘 들었습니다.     


‘민감한 사람’에 대한 심리학 연구의 선구자 일레인 N. 아론은 전체 인구의 15~20% 정도가 타인보다 민감하게 태어나며, 그들은 민감한 오감과 풍부한 감수성, 활발한 우뇌 활동이라는 특징을 밝혀냈습니다. 그녀는 이런 사람을 HSP(Highly Sensitive Person, 굉장히 민감한 사람)라고 칭합니다. 성인 HSP 중에는 유독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잠의 양 자체가 많지 않고,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한 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거나, 꿈을 굉장히 많이 꾼다는 겁니다.    


예민한 혹은 민감한 사람은 생각이 많습니다. 활발한 우뇌 활동의 결과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바닷가로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끼리 모여 바닷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민감한 사람은 뜬금없이 ‘독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바닷가’라는 소재와 함께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의 가지들이 순식간에 뻗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에 갔지. 백사장이 멋졌어. 그런데 따끔. 아, 유리조각을 밟았구나. 그런데 독뱀에게 물려도 이렇게 따갑겠지?’ 민감한 사람의 뇌는 밤에도 멈추지 않고 이렇게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꿈을 많이 꾸게 되는 겁니다. 꿈의 내용은 예지몽과 같이 신비로운 것은 아닙니다. 대개는 악몽으로, 낮 동안 혹은 최근 들어 깊은 인상을 남겼거나 걱정이 되는 사안들입니다.    


하루에도 수 회 낮잠을 자는 아기들은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통제해가는 단계입니다. 목을 가누고, 기고, 걷고, 달리는 등 일과 자체가 무척이나 피로합니다. 두 돌이 넘어가면 자신의 신체를 꽤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 점점 스스로 걷거나 뛰는 일에 흥미를 잃기 시작합니다. 세 돌이면 먹고, 자고, 입고, 싸고, 씻고, 틈틈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일상적인 활동에서 좀 더 강도나 수준이 높아진 새로운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때쯤이면 주어와 술어 사이에 목적어가 있는 문장 성분을 제대로 갖춘 말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지가 발달했다는 뜻입니다. 두뇌활동이 활발하거나 신체활동을 높게 타고난 아이들이라면 특히나 그에 맞는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 자극을 처리하는데 에너지를 다 써야만 우리의 아이들은 K.O. 가 되어 꿀잠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신체를 많이 쓰는 일에는 산책이 있습니다. 유모차에 간식과 식사를 싣고 산책을 오래오래 하는 겁니다. 동네 일대에서 놀이터를 포함,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과 빵집 등을 넣어 동선을 잘 짜서 매일매일 일과처럼 산책을 하면 아이도 즐겁고 엄마의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됩니다. 대중교통이 혼잡하지 않은 시간대에 유모차로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대공원 등 유아들이 각종 체험을 하고 뛰어놀기 좋은 곳에 가 볼 수도 있습니다. 

활동성이 높지 않은 아이라면 앉아서 집중할 수 있는 클레이 놀이나 블록 조립, 머리를 많이 쓰는 일에는 미로 찾기, 직소 퍼즐, 책 읽어주기 등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TV 시청으로는 쉽게 피로해지지 않습니다. 출산 후 각종 질환으로 장기간 요양이 필요했던 제 친구는 아들을 산책시키거나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하기가 힘들어 TV를 많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아들이 잠드는 시각은 통상 새벽 3~4시였습니다. TV 시청으로는 에너지 막대기가 다 깎이려면 새벽 3~4시는 돼야 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 피로하면 뭐니뭐니해도 육체피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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