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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Nov 10. 2019

예민한 아들의 엄마표 미용, 그 시작과 끝


<#엄마표미용폭망 #머리카락 뚜껑>

세상에나! 아들 머리카락이 뚜껑처럼 돼 버렸지 뭡니까. 당시 아들은 15개월이었고, 머리를 저렇게 만든 사람은 저였습니다. 저는 당시 성인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투블럭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미 몇 차례 이발을 해주었기에 투블럭의 모양이 되도록 설계도도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발기를 대고 과감하게 좌측을 밀고 보니 좌측이 아니라 중앙에 더 가까운 겁니다. 정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하면 아들도 놀랄 것 같아서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이성적으로 설계도를 재검토했습니다. 과감하게 남은 좌측을 다 밀고, 반대편 우측은 제대로 잘랐습니다. 그리고 그 우측 머리를 좌측으로 넘겨 많이 잘려나간 부위를 덮었습니다. 뒷머리도 어찌할 바를 몰라 다 밀었습니다. 아들의 머리는 정확히 뚜껑이었습니다.


<해맑은 아들 모습이 엄마는 좀 뜨끔하네>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아들. 우리는 전처럼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한 아주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이야, 미국 해병대네” 아들은 뭔지는 모르지만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솔, 라음의 반기는 톤으로 말을 건네주니 좋은 말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현장 학습 나온 초등학생 무리와 마주친 아들. 민둥민둥 맨살이 드러난 뒤통수가 신기한지 만져보려고 몰려든 형아, 누나들. 무슨 일인지 아들도 어린이 무리 속에서 무척이나 즐거워했지요. 머리를 망쳐서 이발기로 앞머리 빼고 다 밀어버리던 순간의 철렁하고 내려앉은 좌절감이 꺄르르르 아이들 웃음 속에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어머, 이 뒤통수 실화? 만져서 확인하자>

제가 아들의 머리를 직접 미용을 하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아기들은 그대로도 너무나 예쁘지만 태내에서부터 가지고 나온 배냇머리가 빠지고 여기저기서 새로 머리가 나서 자라는 8~9개월이 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주 꼬꼬마인데 유행하는 성인 스타일로 머리 자른 아기들 사진을 보니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투블럭을 하러 미용실에 갔습니다. 10개월 무렵이었습니다. 일단 아들은 엄마에게서 떨어져 미용의자에 앉기부터 거부했습니다. 울기 시작하는 아이를 의자에 앉힌 채 누르고 보자기를 두르려고 하니, 아들은 이 또한 처음 보는 물건과 상황인지라 완강히 거부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미용사는 프로정신으로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셨지요. 저는 아이를 누르고, 아이는 울고, 미용사는 이발을 강행하고. 머리카락은 아이 얼굴에 떨어져 눈물 콧물과 범벅이 되고. 하다 하다 미용사도 결국은 앞머리까지 자르다 중단하셨습니다. 그동안 아들이 쉼 없이 울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반복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그 후로도 세네 번 더 시도해 보았지만, 아들의 저항만 거세졌고 결국엔 집에서 제가 자르기로 하였습니다. 엄마에게서 떨어지는 게 싫어서인가 싶어 안고도 시도해 보았지만 낯선 장소, 낯선 상황, 이발기의 굉음과 그것이 닿는 감촉이 무척이나 불쾌했나 봅니다. 그래서 엄마표 이발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이발기 가격은 대략 1~2만 원 선이며, 웬만한 물건은 다 있는 가게에 가면 3천 원 선에서 미용가위를 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발기를 사면 대개 보자기와 스펀지가 세트입니다. 틴닝 가위라는 일명 숱 가위도 있으면 유용합니다. 대개 미용가위 옆에 함께 진열돼 있습니다. 이발을 할 때는 TV가 큰 역할을 합니다. 신문지 위에 아이를 앉히고, 좋아하는 TV를 보여줍니다. 보자기를 두르고 이발기로 옆, 뒤 머리를 ‘날립니다.’ 이때 3mm로 하면 피부결이 드러나지 않아 비틀어진 이발선이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눈썹 연필 밑그림에서 나온 헤어라인>

두 돌 전의 아기라면 바가지 머리도 귀여우니까 이마에 반원의 바가지 라인을 눈썹 그리는 연필로 표시하고 가위로 따라 자릅니다. 가윗날을 세워서 끝을 가볍게 하는 기술이 우리는 부족하니까 이때 틴닝 가위를 이용합니다. 두툼한 윗머리와 뒷머리도 틴닝 가위로 정리하면 엄마표 머리 끝. 그리고 아무리 삐뚤빼둘해도 1주일이면 아이의 머리는 금방 자라나서 엉성한 선들은 다 가려지고고 대략 단정해져 있으니 과감히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마침내 투블럭, 스크래치를 더하다>

이렇게 1년을 했더니 아들은 이발기를 포함한 이발 자체에 익숙해져서 두 돌 무렵에는 미용실에서도 울지 않고 잘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쯤이면 엄마 손도 어느새 금 손이 되어 간단한 정리 정도는 할 수 있게 되니 43개월 5살, 유치원이라는 사회생활을 앞두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라주기 전까지는 집에서 잘라 주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미용실을 이용하다, 여름이 오면서 갑자기 더워져서 집에서 휘리릭 이발기를 이용해서 잘라 주었습니다. 미용사의 반듯한 머리를 알아버린 아들은 다소 엉망인 두상을 만지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멘트는 “유치원 안 갈 거야.”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부끄러운 머리였나 봅니다. 그렇게 엄마 미용실은 완전히 폐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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