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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Nov 17. 2019

낯가림, 까꿍,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 애착(2)

12개월까지 아기는 나와 대상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지 못합니다. 6개월까지의 아기는 배고프고, 축축하고, 졸리는 본능적인 반응을 처리해주는 엄마가 자신과 동일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다 6개월이 되면 눈앞에 대상이 있고, 그것은 내가 아니라는 분리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엄마를 보호자로 특정합니다. 12개월까지는 눈앞에 있어야만 그 대상이 그 자리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상태의 아기는 엄마에게 강력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의 영아들은 엄마가 화장실 문을 닫고 들어가면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줄 압니다. 그래서 엉엉 웁니다. 결국 엄마는 아기를 안고 큰일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24개월이면 대상 영속성을 완전하게 획득하여 복잡한 조건을 부여해도 그 대상이 그 자리에 존재함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것처럼, 애착 대상인 엄마에게도 그러할 수 있는 시기가 옵니다. 대략 30개월 정도인데요. 그렇게 되면 엄마와 잠시 떨어져 있어도 엄마와 곧 만날 수 있다는 안정된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불안을 달래고,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나 활동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대상 항상성’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이 애착 형성의 결정적인 시기를 만 3세 정도로 보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대상 항상성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대상 항상성은 안정 애착의 마일리지가 채워져야만 가능합니다. 아기의 욕구에 제때 제대로 반응해 주어야만 엄마가 신뢰할만한 대상이 됩니다. 불안해서 안아달라고 울었는데 조용히 하라며 안아주길 거부했거나, 배가 고파서 우는데 그냥 방치했다든지, 아기의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다면 아기는 엄마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불안정 애착이라고 합니다. 불안정 애착은 그 형태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뉩니다. 차라리 스스로 욕구를 없애든지, 아예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기로 하는 회피형, 이와 반대로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이루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욕구가 관철될 때까지 집착하거나,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대해 분노를 터트리는 저항형, 이 두 가지가 결합된 회피저항형입니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타입, 조금이라도 친하다고 여겨지면 금세 정서적으로 의존했다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응해주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타입 등. 전자는 회피형 불안정 애착, 후자는 저항형 불안정 애착의 모습이지요.    


유아기의 애착 형태가 성인기에까지 나타나는 이유는 유아기에 형성한 애착의 형태가 대개는 디폴트 값이 되기 때문입니다. 애착 형성기에는 애착뿐만 아니라 자아의 분화도 동시에 진행됩니다. 애착의 질은 아기가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느끼는가, 즉 자존감 또한 결정합니다. 요구사항이 잘 처리된 아이들은 스스로를 대접받을 만한 존재로 여기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엄마에게 자신을 맞추는 법부터 익힙니다. 이제 막 인지가 발달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더 나은 방법을 스스로 계발할 수 없습니다. 엄마로부터 익힌 자기를 느끼는 법과 관계하는 법으로 사회생활을 넓혀갑니다. 그 과정에서 바른 사랑을 주는 다른 어른이나 친구를 통해 자존감이나 사회성을 건전하게 수정해 간다면 좋겠지만, 대개는 최초의 사고의 틀이 굳건해지는 방식으로 성장해 갑니다. 우리의 뇌는 경험을 기억으로 저장해 두고 유사한 상황이 닥치면 저장된 기억을 찾아서 쓰는, 에너지를 덜 들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세 살 애착도 여든을 가기가 십상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타고난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며,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원하는 바를 찾아 노력하고 달성하고 행복해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누구도 자식이 자신을 부족하다 여겨서 주눅 들어있고, 사람을 피하거나 혹은 집착하거나, 결핍된 애정이나 자존감을 만회하는데 삶을 소모하느라 행복을 느낄만한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기를 소중히 보살펴야 합니다.     


감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모두 민감하여 작은 변화도 감지하며 불안해하고, 타인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껴 자신의 감정마저 침해당하기 쉬운 예민한 아이들은 더더욱 생애 초기 안정 애착이 중요합니다. 엄마라는 ‘안전 기지’에서 그 모든 불안을 추스르며 건강하게 자신의 경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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