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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Nov 18. 2019

예민한 아기, 첫돌에 학폭 가해자가 되다

예민한 아기의 사회성 고민(1)

예민한 아기를 키우는 분들 사이에서 까다로운 식성・잠, 다음으로 자주 들은 불만사항 중 하나가 다른 아이를 곁에 오지 못하게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들은 아기의 그 행동을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물이 되어있는 상황까지로 확대해서 걱정합니다.

제 아들도 첫 돌이 무렵 처음으로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가해자 부모가 된 저희는 피해자 부모와 원만한 합의를 하게 되었는데요...    


때는 생후 10개월 무렵이었습니다. 동네 육아지원센터였고, 그곳에서 우연히 지척에 살고 있는 데다 월령도 같은 딸아이를 키우는 이웃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으로 만나본 다른 아기였는데, 제 아들과는 정반대의 기질과 성향을 타고난 아이였습니다. 뭐든 잘 먹고, 잘 울지도 않고, 잠도 잘 들고, 엄마만 곁에 있으면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라도 경계하지 않고 다가왔습니다. 이 딸아이를 안았을 때는 또 얼마나 보드라운 인형 같은지.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시는 “여자아기는 안는 느낌이 달라”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남자는 태생적으로 여자보다 근육조직이 더 발달해 있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도 여자가 불룩불룩 근육이 솟아오르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들은 평균보다 체중이 조금 덜 나가는 아기였는데, 그럼에도 안으면 부드러운 충전재가 감싸고 있는 짱짱하고 단단한 꼬챙이의 연결체를 들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엄마는 같은 동 아파트 옆 라인에 사는 이웃이었습니다. 육아휴직 중이어서 하루 종일 혼자 육아를 하는 비슷한 일과를 살고 있던 터라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하지만 온종일 쌍방소통의 대화라고는 되지 않는 아기와 그 아기를 돌보는 단순노동을 반복하다가, 말이 통하는 성인을 대한다는 것이 서로에게 꽤나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유식을 만들고 먹일 수는 있지만 정작 엄마 본인 식사는 챙겨 먹기 힘든 그때에 교대로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먹고 치우는 일은 노동 절약과 기쁨 창출이라는 1석2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때 아들은 앞니가 거의 다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소고기 등심을 마시는 수준으로 씹어 삼킬 수 있을 정도였는데 제가 잠시 설거지를 하는 사이에 대참사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여자아기가 비명을 지르며 울어서 가보니 아들은 이 아기의 여러 곳을 물어놓은 상태였습니다. 팔뚝에는 잇자국을 따라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깨, 손가락 등 총 4군데를 무지막지하게 물어놓은 아들은, 흡사 영역을 지키는 고양잇과 맹수를 보는 듯했습니다. 안 그래도 보드랍고 유들유들한 여자아기인데 선명한 잇자국이 더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너무도 죄송했던 우리 부부는 이웃 부부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이웃 간의 회식으로 아름답게 일은 마무리가 됐지만 이후로도 아들은 자신의 영역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한 팔 거리 안에 들어오는 아기들에게 거부감을 표시했습니다. 문제는 그 방식이 젠틀하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가장 많이 쓴 방식이 깨무는 것이었는데요. 첫 돌이면, 엄마 아빠 정도의 한 가지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는 동물적인 인지 단계의 수준이라서인지 원초적으로 무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아기들 중에서도 저희 아들과 유사하게 자신이 원 안에 갇혀있는 존재인양 그 원 밖으로 나오지 않고 행동하는 아기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런 아기들끼리 모아 놓으면 충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웃의 여자아기는 무척이나 살가웠습니다. 같은 아기인 아들에게 서슴없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뭐라고뭐라고 아기말을 했는데, 어른으로 치자면 친화력이 갑인 사람이 처음 만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지금도 떠올리면 엄마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 감동도 잠시, 아들은 곧바로 자기 코앞까지 온 그 아기의 손가락을 물려고 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동물 그 자체였습니다. 그 사고 이후로 저는 아들이 그 아기와 있을 때면 긴장하고 옆에 붙어 앉아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첫돌이면 고작 엄마나 아빠 정도의 한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인데 훈육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다른 아기들과 좁은 공간에서 가깝게 있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혹은 다른 아기와 있어야 한다면, 아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감시했습니다. 다른 아기가 아들 곁으로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장난감으로 아들의 주의를 끌어 이동하게 하는 등 아들의 한 팔 거리가 지름인 그 원을 필사적으로 사수했습니다.    


그러다 15개월 무렵 아파트 단지 안에서 다른 아기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명의 아기였는데, 아들보다 월령이 1년이나 앞선 아이들이었습니다. 누나와 형이었는데, 두 돌이 된 이 아이들은 갓 돌이 지난 아들보다 확연히 인지적으로 발달이 된 상태였습니다. 아들은 둘을 모방하길 좋아했는데, 마치 ‘조선통신사’를 환대하던 막부시대의 일본인처럼 선진문물을 동경하는 역사적 사건을 목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확실히 이 두 문명화된 아이들에게 우호적이었고, 자신의 원 안에 들어와도 반겼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이 두 누나와 형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곁에 있기를 편안해했습니다.    


사회성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유아의 사회성은 어른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유아는 제로에서 발달해가는 존재입니다. 나를 인식하고 나서 남을 인식하고 다음으로 함께 지낼 수 있습니다. 유아가 같은 공간에서 상호 놀이를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만 4~5세는 되어야 합니다. 그 이전에는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각자 놀이를 하는데,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므로 예민한 아기가 다른 아기를 내친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감각적으로 예민한 이 아기들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해오는 존재는 위험하게 느껴질 만합니다. 초반부터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아기를 심하게 혼내거나 때린다면, 아기는 그 인과관계는 모른 채 다른 아기와 함께 있으면 불쾌한 일이 생긴다는 잘 못된 기억을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아기와 있어도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불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험을 쌓아가는 편이 좋겠다는 게 제 취향이었습니다.    


현재 7세인 아들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외톨이는 아닙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잘 놉니다. 다만 다짜고짜 몸으로 부대끼는 놀이는 선호하지 않습니다. 성향이 비슷해서 통하는 친구와는 몸으로도 부대끼고 놉니다. 첫돌의 영역 동물은 단지 그때의 발달과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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