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감정&뇌 발달 비밀(3)
감정은 부모가 알아주었을 때, 부모를 보고 배우며 익힌다고 했습니다.
감정하는 법을 제대로 익히고 발전시키지 못한 부모 중에는 본인뿐만 아니라 자식의 부정적인 감정에 특히 취약한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의 슬픔, 분노, 공포, 불안을 본인이 더 부담스러워해서 일단 그 부정 감정을 받아주지 않거나 오히려 비난합니다. 특히 아이가 분노하면 일단 벌을 주거나 체벌을 하는 등 폭력까지 동원해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아들을 키울 때 저는 제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뚜렷한 이유 없이 불안하고, 걱정이 없으면 걱정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안심이 됐습니다. 그런데다 육아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습니다. 아기가 무에서 시작하는 존재라는 사실도 실감하지 못했고, 아기가 하는 당연한 행동임에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짜고짜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때는 아들이 세 살 무렵이었습니다. 시부모님께서 27층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저희는 3층 정도에 살고 있었는데, 그 27층 아파트는 들어서자마자 거실 한 면이 유리문으로 되어 있어 밖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들은 들어가지 않겠다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현관을 통해 거실로만 들어서면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안고 들어서자니 발버둥을 치며 또 울어댔습니다. 어찌나 거칠게 반항하며 우는지 저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현관 옆방으로 아이를 밀어 넣고 울음 그치면 나와 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문을 닫았습니다. 엄마로부터 떨어지기를 싫어하는 아이를 방 안에 가두면 그게 싫어서라도 울음을 그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 그래도 불편한 게 있어서 우는 아이를 엄마가 방 안에 가두고 문을 열지도 못하게 닫아 버렸으니, 엄마하고도 떨어지고 아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방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문을 열어 나오게 하면 또 울고, 그러면 문을 또 닫고, 그러면 닫힌 문 뒤로 더 큰 울음소리가 들리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자 보고 계시던 시어머니가 오시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oo이가 왜 울지?”라는 솔 톤의 다정한 목소리. 제가 꽝꽝 소리를 질러 어지럽혀놓은 파동의 방안이 차분히 정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계속 다정하게 달래주시니 아들도 곧 진정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구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아이를 꾸짖거나 아이의 엄마인 저에게 핀잔을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문득 자각했습니다. 아이가 남들 앞에서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시끄럽게 우는 것을, 아이가 반항한다, 나는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에 실패했다, 이 실패의 책임은 아이에게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공포감을 줘서 그 반항을 멈추게 해야겠다는 무의식 중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방식은 제가 어려서부터 겪어온 형태였습니다.
차분해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들은 27층 높이에서 밖에 훤히 보여서 무서웠던 겁니다. 저희 집도 3층, 이전의 할머니 집도 3층이라서 고층의 아찔함을 처음으로 겪었던 겁니다. 아들은 그 방문에서 거실의 창 쪽으로는 가지도 않았고, 앉더라도 창을 등지고 앉았습니다. 다음 방문 때에는 그 창에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손자가 27층 아래로 보이는 세상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아시고는 배려하신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 상처 받은 어린 시절로 인해 혹은 다른 이유로 말미암아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고, 아이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덜하거나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덜 알고 있는 겁니다. 초기 5년 동안 변연계의 90%가 발달한다고 하지만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감정하고 인지하는 법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뇌는 일평생 개발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새로운 지식을 쌓고, 새로운 경험을 늘려 간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육아는 축복입니다.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