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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Nov 26. 2019

예민한 아이 사회 적응, 군사작전처럼 ㅇㅇㅇ(1)

예민한 아이의 사회성 고민(4)

  

리허설은 쇼를 하기 전에나 하는 줄 알았습니다.

때는 갓 소위를 달고, 소대장으로서의 훈련을 받던 때입니다. 소대장은 40명 남짓 되는 군인 무리의 대장으로서 전투를 지휘합니다. 소대장으로서 어떻게 공격과 방어 명령을 내릴 것인가를 배우던 참이었습니다. 공격 혹은 방어하기로 한 작전 시간으로부터 할 일이 매우 많았습니다. 작전 수립, 작전 공지, 무기 배치 등 한정된 시간 안에 40명 전투원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중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생략해서는 안 되는 절차가 있었으니 ‘리허설’이었습니다. 해야 할 바를 먼저 해 봄으로써, 서로 죽고 죽일 예측불허의 극한의 상황에 조금이라도 더 적응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예민한 아기들은 낯선 장소・사람・상황을 대개는 경계합니다. 미지의 대상이나 상황은 예측이 불허해서 두려운 겁니다. 아기 때만 해도 집 안이나 근처에서 엄마를 비롯한 친근한 사람들만 만나며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유치원이나 학교, 기타 교육활동을 하면서 생활 영역이 넓어지면 이 낯가림이 거쳐야 할 관문이 됩니다.    


우선 제 아들은 새로운 곳에는 무조건 안 가겠다고 합니다. 7세가 되니 친구들이 슬슬 교육을 시작합니다. 영어, 수학, 태권도, 축구, 미술, 피아노 등등 앞으로 학교에 가서 해야 할 학업활동을 시작하는 거죠. 유치원 적응도 겨우 했으며 조기 교육이 철학에 안 맞기도 하여 사설 학원을 보내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모두 시작하니 불안했습니다.    


절친한 친구가 다니고 있는 태권도장을 가보자 하니, 첫날은 순순히 갑니다. 그런데 점점 낯빛이 안 좋아집니다. 태권도를 가는 날이면 점심시간에 유치원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ㅇㅇ이가 태권도 가기 싫다고 벌써부터 울고 있어요.” 집에서도 태권도 가기 전날 밤에는 걱정으로 잠 못 들었습니다. 급기야 저는 태권도 수련장 뒤편에 앉아 아들과 한 공간에 있기를 3주나 했는데도 결국은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입장은 이러했습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태권도장은 기합소리가 넘쳤습니다. 관장님과 사범님도 쩌렁쩌렁, 대답도 쩌렁쩌렁. 게다가 자유롭기보다는 절도 있기 위해 근엄하게 통제되는 곳이었습니다. 청각적으로 예민한 아들은 계속되는 고성에 불안이 고조되었고, 엄격한 통제를 받자니 그곳은 아들에게 현실세계가 아닌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느껴졌나 봅니다. 그때에 아이의 이런 특징을 수용하고 감정을 받아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 적응을 너는 왜 못 하니!’라는 마음으로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아들은 낯선 곳에서 처음 겪는 일에 굉장히 당황하며 평소와 다르게 행동합니다. 한 번은 몇 개월이나 다니고 있던 문화센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들어가 율동도 하고 퀴즈도 맞추는 수업이었는데, 이 날은 그 수업의 홍보 영상을 촬영하였습니다. 개인정보 활용 동의 문제로 사전 공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아저씨가 이리저리 다니며 아이들을 찍기 시작하자 아들은 ‘오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긴장하면 오른손으로 상의의 옷자락을 들어 올려 만지는 버릇이 있는데, 7살이 된 녀석이 배꼽이 나오도록 상의 끝을 부여잡고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아들이 낯선 상황에서 긴장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속에서 천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평소처럼 하고 있는데, 평소보다도 못한 이상한 모습을 보이니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그때 제 아들이 카메라에 멋지게 잡히길 바라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날 저는 무척이나 화가 났고, 아들은 저의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감지하고 흡수했습니다. 말수도 적어지고 장난 끼 가득한 눈웃음도 사라졌습니다. 엄마의 화를 느끼고 긴장한 탓인지 집에 와서 평소보다 일찍 깊은 잠에 빠졌는데, 자다가 코피까지 쏟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서야' 아이도 그 상황이 어려웠으며,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엄마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괴로움의 이중고에 시달렸겠구나'하고 알아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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