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아이 사회성 고민(5)
그리고 잘 다니던 유치원도 소풍을 가거나 다른 활동을 하는 날이면 전날부터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합니다. 거의 매 달 가는 소풍이고, 소풍이라고 하면 모든 아이들이 전날부터 설레어서 잠 못 이루는 신나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지난달에도 다녀왔는데 왜 또 소풍이 가기 싫어?” 혹은 “다른 아이들은 다 소풍을 좋아하는데, 너는 왜?”라며 핀잔부터 줬습니다. 엄마는 큰 의미 없이 그냥 하는 말이지만,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아이에게 관련된 말은 아이의 정체감과 자존감이 되고 맙니다.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말은 아이의 정체감과 자존감 형성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선 아이의 숨은 감정을 살핍니다. “어떤 게 싫어? 걱정되는 게 있어?”
그러면 아들은 대개는 “엄마랑 떨어지는 게 싫어”라고 합니다.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나 소풍 가는 시간이나 똑같은데 다른 동네로 것이 아이에게는 엄마로부터 더 멀어지는 거라는 불안이 생기나 봅니다. “소풍을 가더라도 유치원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은 똑같아”라고 알려줘 보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소풍 장소를 인터넷으로 찾아서 보여 주며 설명을 해 줍니다. 소풍 장소는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들입니다. “이런 놀이터도 있고, 여기서 밥 먹나 봐...” 공원이나 키즈 카페의 놀이시설을 본 아들은 미지로 인한 불안감이 해소되어 금세 ‘소풍 가고 싶어’ 모드로 돌입합니다.
아들이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염려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이 떠올랐습니다. 입학 전에 미술학원을 잠깐 다닌 게 전부였는데, 가보니 학교라는 곳이요, 낯선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고, 그 생활을 앞으로도 쭉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날에 모두 알게 되어서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펑펑 울었습니다. 운동장 행사 때도 울고, 교실에 들어와 앉아서도 울고, 집에 와서도 울고. 막상 학교를 다녀보니 적응도 힘들고, 적응했다 싶으면 또 새 학년이고, 5학년쯤 되어서야 익숙해지니 중학교를 가고, 다음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새로운 환경의 연속이었습니다. 3월이면 불안과 우울에 함몰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최근까지도 저는 여전히 새로운 곳에 가면 당황했습니다. 제 아들이 카메라 촬영 날 ‘오작동’을 했듯이 오작동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렸습니다. 저 또한 ‘리허설’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곳에 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예행연습을 합니다. ‘우선,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나는 긴장 상태다. 적당한 곳에 위치하고 참석 목적에 집중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찬찬히 보고 따라 한다...’와 같이 시간 순으로 일어날 일과 그때의 제 마음 상태를 예측해 보는 겁니다.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아들이 소풍 장소를 보며 안심하고 소풍을 기대하듯이 말입니다.
7살 가을을 살고 있는 아들은 벌써부터 초등학교 다닐 걱정이 태산입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을 방법으로 검정고시가 있다는 사실이 한줄기 희망인 상태입니다. 우리들은 열심히 머릿속으로 예행연습을 합니다(학교 갈 시기가 임박해지면 정말로 미리 가볼 계획입니다). “학교는 어디에 있는데, 이 길을 따라 걸어서 갈 거야.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겠지. 유치원에서도 친해진 친구들이 많아졌잖아. 학교에서도 그럴 거야. 학교 가서 앉아서 선생님 말씀 듣고 중간중간에 친구들하고 놀다가, 유치원에서처럼 11시 30분 되면 급식 실에서 밥 먹는대. 그리고 양치하고 집에 오면 유치원에서 집에 오는 시간이랑 비슷할 거야.”
곁들어 선생님을 편하게 느끼는지, 친구 중에서는 누구와 무얼 하고 노는지 등 관련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 됩니다. 또한 아이도 막연히 가지고 있던 사회생활 간의 감정 뭉치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런 습관이 반복되면, 아이는 변화를 앞에 두고 자기를 진정시키고, 낯선 곳에서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전략을 스스로 수립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마흔한 살이 되어서야 그런 전략을 세우게 됐는데요, 조금만 더 빨랐다면 ‘오작동’으로 인한 흑역사를 덜 만들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군사작전에서 리허설은 목숨을 지켜줍니다. 예민한 아이의 리허설은?
음...,
우아함을 지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