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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Dec 24. 2019

설마 영재? 생각이 뻗어나가고 지적 유희를 즐겨요!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 나갔을 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공통적인 말이 있습니다. 바로 “공부 잘하게 생겼다.”는 겁니다. 저도 아들을 안고 나가면 어르신들이 유독 그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외모가 중요하진 않지만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니 눈에 보이는 외모 정도로 “귀엽다” “잘 생겼다” "예쁘다 “ 정도가 엄마들이 들었을 때 솔직히 기분이 좋은 말인데요, ”공부 잘하게 생겼다 “는 대체 어떤 인상일까 궁금했습니다.

  아들은 두 돌이 지나고 나서부터 기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헌책방을 가도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서 기차에 대한 책을 쏙쏙 골라서 나왔습니다. 증기기관차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기차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나 책도 즐겼습니다. 고작 3~4살인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차 책을 읽어주길 좋아했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도 집중해서 보고 있는 아들이 신기했습니다. 

  특히 세계의 여러 기차들이 운행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는 걸 가장 좋아했습니다. 아름다운 들판을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모습을 30분이고 2시간이고 들여다보고 있는 겁니다. 여담을 하나 더하자면, 영상에 나오는 기차소리를 모사하기를 즐겼습니다. 증기기관차에 시동이 걸리면서 출발하는 소리를 “츠~~파~~츠~파~츠파츠파”라고 똑같이 흉내를 냈고, 특히나 증기기관차의 종소리를 “따옹띠용”이라고 모사하는 소리가 무척이나 귀여웠습니다. 종소리는 무조건 ‘땡땡’인 줄 알았는데, 학습된 결과였나 봅니다. 이 소리를 듣고 20년째 오르간을 연주해 오신 시어머니께서는 종소리와 아이 소리가 둘 다 ‘라음’이라며 더 신기해하셨습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차가 달리기만 하는 영상을 좋아하는 아들도 신기했지만, 그런 영상을 찍어 올린 분이 있다는 게 더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조회수를 보니 다들 백만 정도는 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 기차 영상을 애청하는 내 아들 같은 아이들이 많은가봐’ 싶은 기묘한 기분 좋은 소속감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아들은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 종류와 유래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깊이 있게 파고들었습니다.

  이쯤 되니 ‘진짜 공부를 잘 할 건가?’ 싶은 강한 기대가 생겨납니다. 더러 만나는 지인들은 영재 검사를 받아 보라는 둥, 한 대상에 대한 관심의 폭이 깊고 넓은 유아가 도드라져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제 아들은 영재가 아닙니다. 영재라면 가르치지 않아도 터득합니다. 한글 정도는 3세에 스스로 뗀다거나 수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깊다거나, 그 연령대의 평균이 수행하지 못하는 지적인 작업을 월등하게 해냅니다. 제 아들은 그런 쪽은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나무가 만 갈래로 가지를 뻗어가듯이 생각을 확장하는 방식이 바로 예민한 아이들의 독특한 사고 구조입니다(크리스텔 프티콜랭,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이세진 옮김, 부키(2014), p.71). 제 아들뿐만 아니라, 제가 만나본 예민한 아이들은 유아 때부터 파고든 소재가 하나씩은 다 있습니다. 공룡의 길고 긴 이름과 살았던 시기, 식성 등 공룡 자료를 집대성한 아이, 전 세계의 유명한 자동차의 이름과 해당 나라를 짝지어 외운 아이, 점수판에 있는 숫자로 더하기 빼기를 즐기는 아이 등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한 대상을 몇 년씩 좋아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깊이 있게 알아가는 겁니다. 그렇다고 영재는 아니었던 이유는 그 대상을 제외한 학습에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관심이 별로 없는 겁니다. 학습에 관한한 기호에 따라 지적인 능력을 수행하는 결과치의 편차가 무척이나 큰 거죠.

  문제는 이 사고 구조가 밤이고 낮이고 멈추지 않는다는 것과 평소에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겁니다. 추정컨대 예민한 아이들의 우측 전전두엽에 혈류량이 맞은 것, 즉 우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신체구조에서 비롯된 사고 패턴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데 우뇌가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밤에 깊은 잠에 들기가 어렵습니다. 뇌가 푹 쉬어야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는데, 생각을 계속 하고 있으니 복잡한 꿈을 꾸게 되죠. 꿈의 내용은 대개가 나에게 일어난 일 혹은 그와 관련된 깊은 감정이 초현실적으로 망라되는 겁니다. 

  만 갈래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형태의 사고는 해보지 않고는 이해가 힘들 것 같습니다. 일단은 생각이 쉬는 틈, 즉 멍 때리는 순간이 거의 없습니다. 기차에 대한 정보를 파고들 듯이, 들리는 말이나 보이는 대상에서 출발하여 순식간에 생각이 많아집니다. 모두 같이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치면, 예민한 사람들은 ‘휴가를 뜻하는 바캉스는 프랑스 말이지. 때는 프랑스 경제가 호황을 이르던 때였어. 자본주의는 호황을 정점으로 쇠퇴하는 시기가 올 수 밖에 없지.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고민이 바로 여기서 나왔어.’라며 뜬금없이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겁니다. 이런 자신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화의 소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집중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이 사고구조 때문에 본인이 화제를 벗어났음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논점을 자주 일탈하면 대화의 맥을 끊는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기들의 경우 이 사고 구조 때문에 유난히 집 안을 쑥대밭으로 잘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기들은 언어가 발달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몸으로 사고를 합니다.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고 조작을 가함으로써 대상을 이해합니다. 돌쯤 되니 아들이 제법 높은 부스터에서 물건을 아래로 떨어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접시로부터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물건의 높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과 높은 곳에서 물건을 던지면 아래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아기들이 이런 식으로 인지를 발달시킵니다. 하지만 그 아기들보다 생각이 더 많이 일어나는 이 아이들은 더 많은 확인을 합니다. 집에서 아기와 있자니 충돌할 일이 무척 많아졌습니다. 저는 많이 깔끔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깔끔한 엄마들이라면 아무리 치워도 계속 어질러대는 이 아이들을 감당하기가 무척이나 힘드실 겁니다. 

  아이가 말을 통해 배울 수 있기 전까지인 돌부터 두 돌 사이가 특히 이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때 동네에 있는 하천 공원에서 해가 떠있는 시간을 거의 보냈습니다. 밥과 간식을 잔뜩 챙겨 유모차에 싣고 끝없이 이어진 하천을 따라 걷노라면 각종 풀과 나무에 잉어, 왜가리, 놀이터 등 아이의 생각을 다양하게 집중하거나 분산할만한 거리가 풍부했습니다. 아들은 그 하천에 나가기를 싫어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집돌이’가 되었으니, 여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성 챕터에서 자세히 밝혀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구조는 문제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야만 능률적으로 돌아갑니다(크리스텔 프티콜랭,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이세진 옮김, 부키(2014), p.77). 단순 반복은 지루하고, 복잡한 문제는 재미나게 술술 푸는 겁니다. 그래서 지적인 유희를 즐깁니다. 무얼 하나 알아도 깊고 넓게 알면 재미나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복잡한 문제를 척척척 풀어냅니다. 이 사고구조는 잘만 다루면 진짜로 영재성에 버금가는 창의적인 정보 분석이나 종합을 해낼 수도 있고, 다방면에서 팔방미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일을 해내는 멀티태스킹에 능할 수도 있지요. 물론 공부하는데 써주면 학부형으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요.

  “공부 잘 하게 생겼네.” 모르겠습니다. 많이 살아보셔서 사람 보는 눈이 생긴 어르신의 경험상의 말씀일지, 아니면 그냥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이 취향을 발전시켜 나가고, 탐구의 방향을 넓고 깊게 잡는 건 무조건 좋습니다. 그만큼 인생이 풍부해 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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