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나의 마음에 쌓여만 간다

by JE

새하얀 눈이 소리 없이 쌓이는 오늘 밤,
계절은 또 한 번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나는 아직 지난 계절의 마음 한 조각도
제대로 놓아 보내지 못한 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잊으려 해도 손에 닿은 기억들이
어느새 다시 나를 붙잡아 끌어당긴다.
추억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지나간 순간인데도 지금의 나를 너무 잘 아는 것처럼 따라붙는다.

차가운 겨울바람보다 더 텅 빈 마음,
어디에 있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손끝처럼
내 안의 온도는 계속 얼어붙기만 한다.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있는데
따뜻해질 줄 모르는 마음이 있다.
마치 뭘 잃어버렸는데 뭘 잃었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막연한 공허감만 손바닥에 맴돌 뿐.

주변은 모두 빠르게 흘러가고
나는 혼자 제자리에서 발이 묶인 채,
성숙해지는 법도 알지 못한 채,
그냥 시간에게 떠밀리기만 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계단을 오르는 속도로 자라는데
나는 멈춰 있는 채로 또 한 해를 맞이하는 느낌.
어른이 되는 건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마음이 견뎌내는 법을 배우는 거라면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어떤 밤은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뒤처진 게 아니라
그저 나만의 속도로 가고 있을 뿐일지도.
눈이 녹는 속도가 다르듯
나의 눈이 늦게 녹는 걸까,
언젠가 녹는 눈인 걸까,
이 눈이 녹다 너무 추워 얼음이 되진 않을까.

조급함에 밀려 마음을 다그치다가
스스로를 더 얼어붙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냥 이렇게 느려도 괜찮다고
내가 나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천천히 녹아야만 지워지지 않는 강이 되기도 하니까.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

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나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계절은 반복되고
그 반복 속 나는 항상 다르듯
반복되지만 새로운 나의 계절,
그 계절을 맞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계절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양을 바꿔 다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돌아오는 걸까.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달라지는 걸까.

눈이 녹으면 물이 되고
물이 흐르면 길이 되듯,
언젠가 이 마음도 흘러갈 것이다.
그때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겨울을 끝까지 지나가야 한다.

어쩌면 봄은 시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견뎌낸 겨울이 만들어주는 것.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