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못한 시간이 움직이고 싶게 하다
깁스를 한 지 56일, 정확히 두 달이 지났다.
움직이지 못한 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그저 멈춰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이 시간을 지나며, 나는 몇 가지를 분명히 배웠다.
1. 세 끼를 제대로 챙겨 먹어본 건 스무 살 이후 처음이었다.
처음엔 살이 찔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뼈가 붙으려면 잘 먹어야 합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고 하루 두 끼, 때론 세 끼를 건강하게 챙겨 먹었다. 균형 있게, 진심을 담아, 양껏 먹는 연습을 했다.
엄마가 3일 동안 서울에 와서 매 끼니를 챙겨주시던 때,
내 얼굴은 금세 통통해졌다. 따뜻한 밥의 힘이 몸에도,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물론 얼굴이 토실토실해졌고, 티도 났다. 핫;; 하지만 생각처럼 ‘미친 듯’ 찌지는 않았다.
엄청나게 배가 엄청나게 나오거나 바지가 잠기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잘 먹는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제 시간에 밥을 먹고 간식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리가 완전히 나아도, 나는 이제 제 시간에 밥을 잘 챙겨 먹을 것이다.
2. 두 달은 정말 금방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두 달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갔다면, 앞으로 남은 5개월도 분명 금방일 것이다. 즉, 2025년도 금세 지나간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직을 하더라도, 그 전까지 나는 성과를 내는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꾸준히 무언가를 해낸다면, 내 일로 인정받는 경험도 가능할 것이다. 윗분들에게도 ‘이 사람이 뭔가 하려 한다’는 신호를
한 번쯤은 보내보고 싶어졌다.
이왕 있는 자리, 의미 있게 버텨보자.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3. 아플 때도, 뭔가는 계속해야 한다.
몸이 아프다고 마음까지 함께 눕게 둘 순 없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일하고, 루틴을 이어가는 것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감각을 지켜줬다. 아프다 다쳤다는 나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도록 뭔가 하는 것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부서에서 적응하며, 적당한 열정으로 일을 해나갔다.
영어 공부도 하루 조금씩 이어갔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작지만 분명히 나아진 나 자신을 느낀다.
4. 휴직하지 않고 일한 선택은, 내게 가장 큰 위로였다.
이미 후직을 한번 했다는 이유로 휴직 하지 않았지만 사실 다친것에 매몰되지 않고 생각을 돌리려고 회사일을 계속 했다.일의 강도는 조절했지만, 일 자체는 놓지 않았던 것, 그 선택이 나에게 책임감을 남겼고, ‘나는 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사실 나는 이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하려 했다. 몸이 이렇게 다치지만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은 사표를 쓰고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병원비 걱정이 먼저였고, 그래서 나는 일단 ‘계속 다니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알게 됐다.
나는, 생각보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이 시간.
내가 나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이 감각.
그게, 꽤 괜찮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의 다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두 달이 이렇게 빨리 지나간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 단단하게 채워보고 싶다.
어떤 방식으로든 결과를 내고, 흔적을 남겨보고 싶다.
움직이지 못한 두 달은,
결국 내 안의 ‘움직이고 싶은 마음’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줬다.
아직 일주일 더 깁스를 해야하지만 편안하게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