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복은 몸이 먼저 안다
9월 11일, 아직 볕은 따갑지만 바람은 선선한 날.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계족산으로 향했다. 다리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오래 걷는 게 걱정되었지만, 가을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몸을 이끌었다.
공복 상태로 천천히 네 시간을 걸었다. 장마 직후 찾아왔을 때는 미끄러운 흙길과 아픈 다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지만, 오늘은 달랐다. 바닥은 단단하고 미끄럽지 않아 한 걸음 한 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생각보다 오래 걸을 수 있었고, 그 자체가 작은 기쁨이었다.
산길 길가에 떨어진 밤송이만 보아도 마음이 환해졌다. 가을이 우수수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을 막연하게 기다렸던 것 같다. 뜨거운 여름이 지난 아름다운 가을. 알 수 없는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퇴사 후, 순간순간 힘들었던 감정들이 여전히 떠오른다. 정리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한 마음의 덩어리들. 하지만 오늘의 걸음 속에서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좋은 날씨를 반기고, 좋은 풍경을 바라보고 싶은 내 안의 욕구가 몸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몸이 먼저 안다. 내가 괜찮은지, 마음보다 몸이 더 솔직하게 알려준다. 마음을 억지로 믿기보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움직임 속에서 회복을 확인한다. 따뜻한 가을을 품으며, 이제 나는 새로운 챕터를 준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