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하기 싫다. 이제는 이런 걸로 화를 내기도 싫다. 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생각들이 들었던 적이 있다. 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수도 없이 겪었다. 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개성이 있고 고유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사이의 틈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 틈들은 사이가 벌어지듯 차이를 만들어 낸다.
처음 저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화가 났다. 내 상식 밖의 행동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것들로 내가 피해를 보는 것 같아서 싫었다.
결국 화는 상대방과의 불화를 만들었다. 상대를 비난하고 내 생각을 강요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쓸모없는 짓이었다.
나는 이 불화에서 자존감의 의미를 다시 알았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자존감이 아니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만으로는 자존감이 높을 수 없었다. 높은 자존감은 상대의 자존감까지도 존중할 줄 알아야 했다. 상대와의 불화는 내 자존감에 피해를 입는 일이다.
높은 자존감은 불화를 만들지 않는 힘에 있었다. 나의 자존감만을 내세우는 것보단 상대와의 불화를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 더욱 높은 자존감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상대를 내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도 화를 내지 않고 불화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분명 상대도 자신만의 자존감을 가지고 있을 테니 그것을 지켜주고 내 자존감까지 지키고 싶었다. 때문에 나는 그저 ‘귀여운 내가 참는 수밖에’라고 생각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커다랗지만 서로 색이 다른 공은 누구의 공이 더 큰지 대결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로의 색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공은 이미 당신에게 너무나도 귀엽기에 굳이 남에게 귀여워 보일 필요가 없다. 상대의 공은 상대에게는 너무나도 귀엽지만 당신에게 귀여워 보일 필요가 없다. 누가 더 귀여운 공인지는 모르겠고 나는 그저 내가 너무 귀엽기 때문에 그걸로 만족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