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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an 02. 2024

되도록이면 밝은 쪽으로

퓨쳐 셀프의 두 번째 위협은 희망을 갖게 된 사람에게 들이닥칠 과거의 그림자다.


과거, 현재, 미래란 흐르는 것일 수 있고,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심리적으로는 하나다. 서로가 서로를 돕거나 괴롭힌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더 괜찮은 과거를 만들기다.  


경험을 다시 쓰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황정은의 소설<연년세세>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본다.


소설 속 한영진은 동생 한세진이 올린 작품 공연에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발견한다. 연극 무대 위의 등장 인물들은 한영진 자신을 연기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그 장면들을 같이 본다.


한영진은 벌이가 시원찮은 아버지를 둔 한 집안의 장녀다. 꿈도 내려놓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물건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렸다. 부모님 수술비용도, 동생들 학비도 모두 한영진의 월급 봉투에서 나왔다. 한영진에게는 희생과 노동으로 집안을 일으킨 자부심과 함께, 막내 아들에게는 편하고 기회와 가능성이 충만한 땅에서 살기를 바라는 엄마에 대한 분노, 그리하여 다시 자신의 삶에 대한 경멸과 환멸로 치닫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


고생한 사람들의 연대는 쓰디 쓰다. 너도 고생했기 때문에 나의 고단함을 털어놓을 수 없어 꾹 참고 지나온 시간. 그 시간들을 어떻게 엮을지 시도하는 일이 한영진에게는 피곤하고 자책감이 든다.


현명한 쪽으로.

되도록이면 밝고 덜 서글픈 쪽으로.


거리를 두고 직면하며 다시 쓰는 일에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다.

변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사는 더 괴롭다는 인식일 뿐이다.


주어를 '나'에서

'엄마'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로 바꾸면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럴 수 있는' 것다. 


나는 그런 노력을 왜 짠하게만 생각했을까. 생각은 견디고 애쓰는 것이었다. 상대를 이해할 수 없어도 그걸 티내는 말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 하지만 그걸 대부분 다 안 하고 살고 있었다. 그 사실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 현명한 걸까?



어쨌든, 오늘의 미션은 이것이다.




실망, 깨진 꿈, 실현되지 않은 기대, 거친 말과 비난, 실수가 가져온 트라우마 등 과거에 겪은 경험들을 다시 써봅시다. 공상이나 가짜 이야기를 쓰자는 것은 아니고요. 한결 담담하게 ‘그럴 수 있었다’라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보자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것들도 덧붙여 보세요.      





그나저나, 난 작년 10월 말쯤 과거를 직면하고 다시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일. 퓨쳐 셀프의 위협을 하나씩 걷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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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썼던 글.



나는 오랜 기간 동안 실패라는 것과 특별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나는 실패를 불러들인다. 실패를 견뎌 낸다. 실패가 지닌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고 나서 실패에서 배울 점을 뽑아먹는다. (27)


<더 시스템>





"선생님은 어렸을때 꿈이 뭐였냐면..."


    언제부턴가 실패한 꿈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나이가 됐다. 아니,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그런 때가 되었다고 해야할까. 대체로 '실패'라고 하면 운이 없거나 무지하거나 아니면 그냥 멍청해서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 세 가지에 모두 해당되었다. 이걸 인정하는 때가 오다니.

                                                                                                                                                                            


   어쩌면 꿈을 키워가며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에는 결과에 대해 자책도 함께 묻어 오기 때문에 나는 속속들이 내 삶을 돌아보고 그 면면을 분석하는 일을 해내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 실패, 또는 실패에 가까운 경험들이 땅에 떨어지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패, 혹은 실패에 가까운 #1 통역사 지망생

    고등학교 시절 포트폴리오까지 만들어가면서 통역사의 꿈을 키웠었다. 검색창에 '통역사의 꽃'이라고 치면 최정화 통역사가 부스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동시통역하는 모습이 떡하니 나왔다. 가슴이 뛰었다.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뛰어난 외국어 능력 외에도 순발력과 센스가 필요하다' 라는 구절을 형광펜으로 짙게 그으면서 설레하던 소녀였다. 어린 시절 성공이라는 단어에 왜 그렇게 꽂혀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성공이 행복 동의어인 줄 알던 아이였던 것 같다.

출처: '절차탁마, 통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동아일보)


    대학교 4학년,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나는 미국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결국 교육대학원을 진로로 택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내 성향은 통역사에게 필요한 순발력보다는 번역가의 꼼꼼함과 끈기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커져버린 꿈에 압도 되어버렸다. 어떤 일이든 정말 잘 해내고 싶다면, 열정을 빼야한다. 이 이상한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금새 또 잊었고,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깨달음 정리

- 열정은 헛소리다. 작아도 꾸준한 성공 경험이 먼저.

- 꿈을 꾸면서 철저한 자기객관화는 필수.




실패, 혹은 실패에 가까운 #2 번역가 지망생

    임용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통역은 성향에 맞지 않는단 걸 알았으니) 번역에 대한 미련과 갈망이 올라왔다. 자타공인 행동주의자였던지라, 출판번역과정에 등록했다. 출판기획이 번역의 시작이며 끝이라는 걸 전자책을 2권 번역하는 고생을 하고서야 몸소 체험했다. 주말마다 서울행 버스를 탔고, 아침 9시 수업에 맞추려면 금요일에 올라가서 불편한 잠자리를 감수해야했다. 그 땐 열정의 맛이 참말 달콤해서 고달픔 마저 헹복했지만 꿈엔 어느 정도 결과물과 피드백이 있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실김했다.

번역 과제하면 정리해둔 번역 체크리스트

깨달음 정리

- 수업에 들어가기도 전에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하면, 막판 한 방을 만들 힘을 쓸 수 없다.

- '발굴되는' 꿈이란 허상. 멋진 번역문으로 어필했어야 했다. 짧고 굵게 결정적인 한 방, 혹은 한 문장.

- 외국어 번역이지만, 결국 한국어로 쓰여질 글. 명문 필사 연습은 필수.




실패, 혹은 실패에 가까운 #3 해외 영업

    힉교에 오기 전, 2년 정도 자동차 부품 회사의 해외 영업팀에 있었다. 자동차도 부품도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오직 통번역 일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정규직이라는 사실. 처음엔 몰랐다. 정규직이란 들어가는 순간 사라지는 메리트이며, 통번역 일은 해외영업 업무의 일부일 뿐이란 걸. 사람이 이렇게 좁고 어둡다.

    물론 2년의 시간동안 참 많은 에피소드와 경험들을 건졌다. 비즈니스 이메일 쓰는 법, 말 많고 탈도 많은 인도 바이어들과 소통하는 법(인도 영어 발음 개인기는 덤), 더 괜찮은 견적가를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 수행통역하면 만났던 부사장과의 인연(그는 이동중에 내게 어반자카파의 'Beautiful Day'를 아냐고 물었다 >_<), 미국 디트로이트로 수행통역차 떠났던 출장, 매뉴얼 번역 작업 등등. 30대 직전, '결국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폭발하면서 퇴사 했지만, 비전없는 상사와 업무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결국 학교로 돌아왔을 것이다. 회사에서조차 나는 연구소에 있었고, 연구가 내 성향에 맞다는 걸 30대에 들어서면서야 알게 되었다.


깨달음 정리

- 생각보다, 많은 경험과 성과를 이뤘군.

-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어.

- 아이들에게 나 자신에 대해 알기, 가 국영수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해.

- 2,30대는 꿈을 찾고 헤매기만해도 짧은 시간.


    되게 많이 실패한 줄 알았는데, 적고보니 몇 개 안 된다. 자의식 충만했던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생활에 시원한 바람 한 줄기 쐬이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하고 산뜻한 경험이다. 나는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 '실패가 많아요'라고 생각했는데, '경험치가 쌓였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앞으로도 닥쳐올 실패들은 인정하고 뽑아먹기만 한다면 모두 내 자산이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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