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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an 11. 2024

조금 미리 사는 사람

언제 와? 곧 도착해요!라는 말

큐레이션(Curation)은 ‘작품에 생기를 부여하는 활동’이란 의미로 ‘돌보다’, ‘보살피다’라는 뜻의 라틴어인 큐레어(Curare)’에서 왔다. 보통 큐레이션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할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재는 미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양질의 데이터를 취합·선별·조합·분류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재창출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돌봄의 의미를 제대로 발견한 건, 박준의 시. 그리고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말. 신형철은 "서정의 근본 형식이 회상이며 돌아볼 때 발생하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거리 소멸, 즉 서정적 융화가 시의 본령"이라고 말하면서 "그 회상의 시들을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본다'는 상황만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에 도착한다'라고 말해야 할 상황으로 그리기를 좋아한다"라고 해석한다.


 



우리가 오래전 나눈 말들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쯤에는 그해 여름의 말들이 막 도착했을 것이고요.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중 '숲' 일부





"뱉은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모여드는 숲"에서 박준에게 과거는 "더 먼 과거로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지금 이곳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현재로 오는 과거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도착할 현재를 정성껏 살아가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역사>, 310-311)  


한 치 앞을 모른다. 시시각각 변한다. 오늘 이렇게 다른 생각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의 내가 지난날의 퓨쳐 셀프였다. 차마 꺼내놓지 못했던 말도 계속 쓰다 보니 하루하루 글이 쌓여 미래의 나를 '돌보고 있었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 당신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인생의 역사>, 317





삶의 효율은 차갑게 나를 품었다. 월 수입을 훨씬 웃도는 열정이 번아웃으로 막을 내리지 않게 도고, 언제 몇 분 동안 몇 가지를 할지 시스템대로 살다 보면 달아오른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사람은 3개월 아니, 8주 안에도 휙휙 바뀌었다. 꾸준히 쓰는 한, 계속 모양이 변하겠구나. 절대 못한다고 했던 일도 금세 적응하는 게 사람이다.


Make that happen! 안 되면 되게 하라!


뭉클북클러버의 단골 질문은 주로 "어떻게 해야 하죠?" 즉, 방법 how-to에 관한 것. 뭉클북클럽은 '지속가능한' 실천법을 찾고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고 뭉클러버들은 '꾸준히 하자'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자꾸 불을 지핀다. 우리가 자주 만나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작은 성공을 자랑하는 기쁨만큼 설레는 도착이 어딨을까. 큰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작은 미래를 수정해 가면서 내일 버려지지 않고 모일 말들을 나누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미션 레터를 쓰면서 내가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니길 바란다. 미션 레터가 끝나가지만, 책을 덮은 후에도 우리의 대화는 계속될 것이다.


계속 모를 거라는 앎. 어렵고 불편한 나를 돌보는 마음에 적응하기. 남들이 원하는 삶 말고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끝까지 묻고 묻고 또 묻기. 돌보는 기쁨, 살핌 받는 기쁨, 의문이 풀리는 개운한 기쁨, 개의치 않는 단단한 기쁨, 미스터리를 자꾸 만드는 기쁨, 숨통이 트이는 기쁨.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하고 발명하기. 






한껏 성장한 나를 떠올려봅시다. 생생한가요? (그렇지 않다면 목표를 다시 점검해 보세요.) 퓨쳐 셀프에 얼마나 연결되어 있나요? 얼마나 전념하고 있나요? 0부터 10까지의 숫자로 표현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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