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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an 13. 2024

질문의 두께

질문 있는 사람?



질문은 넘친다. 우린 사실 질문에 유능하다. 모두들 마음에 품고 산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다만, 그걸 풀어놓는 방법을 모르거나 '그래도 되나?' 제동을 걸 뿐이다.



뭉클북클러버들은 수줍음과 전투력을 모두 겸비한 입체적 캐릭터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카드를 꺼내 보일 뿐, 부족한 건 질문력이 아니라 상황이다.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정체성을 깨달을 상황. 속된 말로, 판을 깔아줘야 한다. , 알아서 그 판을 벌이는 능력이 이 배움의 끝판왕이겠지만.



22살, 대학교 3학년. 미국의 한 대학교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다. 1년 간 참조목록으로 가득한 에세이를 쓰다 돌아왔다. 하지만, 살면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소설 수업의 한 장면. 주 3회, 소설 한 권을 3분의 1씩 읽어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었는데, "Anybody?" 교수의 말 한마디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학생들은 일제히 손을 들었고, 손을 들지 않는 사람이 더 눈에 띌 정도였다.



문화적 충격으로 얼얼해졌던 그땐, 나를 얼어붙게 한 것이 질문의 열기였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을 가르쳐본 지금의 생각은 다르다. 질문은 상황에서 나온다. 질문은 '먼저' 던지는 사람이 있고, 질문 거리를 계속 만들어도 '되는' 상황에서 나온다. 모르는 건 묻는 당연한 상황 말이다.



질문의 두께

책에서 바로 찾을 수 있고 답이 딱 떨어지는 질문은 얇은 질문 Thin question,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은 두꺼운 질문 Thick question이라고 한다.



현재, 평가 기준만 물의를 빚지 않는 선에서 받쳐준다면, 몇몇 훌륭한 선생님들은 여러 두께의 질문 학교 교육과정에서 실현하고 있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주 소심하게(?) 수행평가를 통해 실현해 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교육과정은 시험이 전부 담아낼 수 없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질문법

아이들은 늘 그렇게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해요?" 물론 상황이 만들어지면 중요한 건 질문법이다. 질문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 책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챗GPT로 영어 질문을 만들고 영어 에세이를 쓰는 법을 아무리 가르쳐 줘도, 결국 주제 잡고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건 사람이다. 딱 질문하는 만큼만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챗GPT의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주체와 목적에 따라 질문에 대한 조언은 천차만별이다. 그것은 곧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므로, 질문은 한 사람, 한 집단이 품어야 할 삶의 크기보다 더 크다. 끝도 없고, 끝낼 필요도 없다.



개인적으론,

삶의 페이지를 살아볼 사람들에겐,

<능력 있는 사람은 질문법이 다르다>

삶의 첫 페이지를 살아본 사람들에겐,

<고수의 질문법>

질문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은 부모, 교사, 리더에겐, <질문하는 독서의 힘> 추천한다.



작년에는

영문기사를 읽고 5W 1H를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점을 표현하거나

소설 <Wonder>, <Frankenstein>, <Hatchet>을 읽으면서 나와 타인을 깊이 이해하는 질문을 던졌다면



올해는 주제를 잡고 영어 에세이 한 편을 쓰는 수업을 짜볼 생각이다. 흔하디 흔한 에세이, 어디서 복붙 한 느낌이 나는 본인 수준에 안 맞는 '척'하는 에세이는 이제 질린다. 마중물과 피드백 제공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질문 몇 가지를 샘플로 보여주고, 그 후엔 '옳지, 옳지, 그다음엔?' 더 질문해 주는 사람. 끌어내고 옆에서 쿡쿡 찔러주는 사람. 



마중물과 피드백

마중물로 활용하기 위해, 질문 노트를 만들었다. 5W1H 질문, 분석하고 추론하는 질문, 상상하는 '만약' 질문, 정답은 없지만 분명 답은 있을 질문. 나누려면 2개, 3개, 5개로도 나뉠 수 있는 질문들. 교수법은 '그렇게 질문하면 안 돼' '학습법 말고 학습 내용에 대해 질문해 봐' '음, 더 나은 질문 없을까?'라는 조언에 가까운 브레이크를 만든다. 단은 뭐든 물어야 한다.



으르렁, 앙~~~~



작고 귀여운 고양이에게도 사나운 이빨이 있다. 난 그 뾰족한 이빨을 다듬는 법을 가르친다고 믿으며 스스로 경계한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보며 귀여움보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다.



나부터도 질문에 관한 '역사 없음'과 '흑역사'를 동시에 갖고 있다. 배워가며 가르친다. 이 글쓰기는 질문 여행기이다. '이렇게 밖에 질문할 수 없었나?' 아쉬웠던 질문 때문에 낯 뜨겁고, 당황스러웠던 경험. 질문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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