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막바지 헝가리 시골 마을 할머니 집에 맡겨진 쌍둥이 소년의 이야기. 간결한 문체로 후루룩 읽히지만 다가오는 이미지는 잔혹하고 섬뜩해서 그 간극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견디기 힘든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우리는 맞으면 아프니까 운다.
굴러 떨어지는 것, 긁히는 것, 찢기는 것, 일하는 것, 추위나 더위 따위가 다 고통스럽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단련시키기로 결심했다. 아파서 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서로의 뺨을 갈기다가, 다음에는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얼굴이 부어오른 것을 본 할머니가 묻는다.
"누가 이래 놨냐?"
"우리가요, 할머니."
"서로 싸웠단 말이냐.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연습을 한 것뿐이니까요."
"연습이라고? 이제는 완전히 돌아버렸구나! 좋아서 하는 짓이라면 할 수 없지......"
소설 속 '우리'는 몸과 마음을 단련한다. "굴러 떨어지는 것, 긁히는 것, 찢기는 것, 일하는 것, 추위나 더위 따위가 다 고통스"러워서 우는 일이 없도록. 바보! 얼간이! 추잡한 놈! 깡패! 돼지새끼! 같은 모욕적인 말들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서. 더는 들을 수 없어서 잊어야 하는 말들도 연습한다. 난 너희를 사랑해... 난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거야... 귀여운 것들....
단련이란 기쁨에도 슬픔에도 무던해지는 것이다. 너무 기뻐하면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단련들은 강해진다기보단 무감각, 마비로 보인다.
'우리'는 일하고 공부하는 와중에 갖가지 연습을 한다. 자발적이며 맹목적이다. 구걸하는 기분과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구걸 연습을 한다.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도 한다. 장님은 할머니의 검은색 삼각숄로 눈을 가렸고, 귀머거리는 풀을 뭉쳐서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한참을 서로의 귀와 눈에 의지해서 연습을 하니 이내 숄 없이도 장님이 되고, 귀를 틀어막지 않아도 귀머거리가 되었다. 닭, 토끼, 오리처럼 사람에게 잡아먹히는 동물부터 죽일 필요가 없는 동물까지 죽이는 잔혹 연습도 한다.
바로 그 순간 정원에서 폭발음이 일어났다. 그 직후 우리는 땅에 쓰러진 엄마를 보았다.
[...]
우리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배에서는 창자가 터져 나왔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아기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머리는 폭탄으로 팬 구덩이 속에 늘어져 있었다.
[...]
우리는 구덩이 한가운데에 모포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엄마를 눕혔다. 아기는 엄마의 가슴에 여전히 붙어 있었다. 우리는 시체 위에 모포 한 장을 다시 덮고, 구덩이를 메웠다. 사촌 누나가 시내에서 돌아와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우리가 말했다.
"응, 폭탄이 떨어져서 정원에 구덩이가 생겼어."
엄마와 여동생의 해골과 뼈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마치 물건을 대하는 것과 흡사하다. 섬뜩할 정도로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 전쟁이 끝난 후, 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 장학사에게 거짓말을 한다. 폭발 사고로 불구가 되었으며 정신적 충격으로 환각을 본다고 둘러댄다.
우리가 물었다.
"정말 죽고 싶으세요?"
"내가 그밖에 뭘 바라겠어? 날 도와주고 싶거든, 이 집에 불이나 질러줘. 이런 꼴로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는 않으니까."
우리는 말했다.
"하지만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런 걱정까지는 안 해줘도 돼. 불이나 질러. 너희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그럴게요, 아주머니. 저희는 할 수 있어요. 저희를 믿으세요."
우리는 면도칼로 그녀의 목을 그었다. 그러고 나서, 군용 트럭으로 기름을 가지러 갔다. 두 시체와 오두막의 담장에도 기름을 부었다. 불을 붙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사실만을 원한다. 성경책을 다 읽었지만 지키지는 않는다. 십계명에서 '살생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전쟁통에서 사람들은 모두 죽이기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이나 감정이입은 철저히 배제되고 오직 사실 혹은 진실로만 묘사한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이야기들이 쓰여 있는 책들을 읽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말과 행동은 알쏭달쏭한 '그들만의 윤리'이다. 거짓말도 협박도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있다 돌아온 아빠는 감시를 피해 국경을 넘기로 한다. 두 철조망 사이에 묻힌 지뢰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음 날 아침 죽은 할머니가 남긴 보물과 판자 두 개를 챙긴다. 잠시 후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아빠는 두 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 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데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국경을 넘기 위한 지뢰 탐지기에 불과하다. '우리'의 이름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두 쌍둥이는 전후문학에서 흔히 보이는 정체성 혼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해석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큐레이터 노트:
글자 그대로든 비유적으로든 전쟁은 진행 중이다. 상실의 고통이 깊어지면 사람은 얼마나 차갑게 돌변하는지.
*오늘의 책: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중 제1부 비밀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