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 굴러가는 여름
마음 쓰는 시간 마지막 이야기: 당신의 사전
이 글을 쓰게 된 건 어떤 시가 내 마음속에서 들어와서는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
봄, 놀라서 뒷걸음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2-1.
돌
[...] 주워 온 돌 하나. 아무것도 아닌 것 하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쓸데가 없다. 그저 돌멩이 하나다. 쓸데가 없어서 돌은 이모저모로 쓸데를 찾게 만드는 사물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용할지는 돌의 주인에게 달렸다. 돌의 용도를 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땅
생명이 싹트는 곳에서 돈이 싹트는 곳으로 바뀌었다.
씨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키워가며 알아내는 것.
『한 글자 사전』, 김소연
2-2.
이기심:자기애
'이기심'은 타인에게 사랑받는 그 순간을 가장 기뻐한다면, '자기애'는 자신 바깥을 둘러볼 때에 스스로를 사랑할 힘이 생긴다. 이기심은 상대적이고 동시에 타산적이며, 자기애는 자기중심적이고 동시에 이타적이다. 이기심은 자기 함정에 빠져 있고, 자기애는 자기 사랑에 빠져 있다. 곤란한 상황에서, 이기심은 타인을 써먹고 자기애는 스스로를 사용한다. 이기심은 계산하고 시샘하느라 바빠서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불친절하지만, 자기애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사랑해 줄 사람을 발굴해 내느라 바빠서 계산하고 시샘하질 못한다.
『마음 사전』, 김소연
2024년 한 해도 벌써 반을 살았다. 아니, 살아냈다. 질문독서수업이 끝나가고 있고 시험과 생기부 작성까지 마치면 여름 방학이 돌아오겠지. 그전에 내게 하나의 과제가 더 남아 있다. 3차시 정도 아이들과 추가적인 활동을 진행해야 하는 것.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영시를 선택했고, 최근에 친해진 문학쌤에게 융합 수업을 제안했다. 3차시라서 시의 시옷도 꺼내보지 못하고 끝낼 시간에 융합까지.
애초에 시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해 주겠다거나 시의 형식부터 내용까지 주욱 훑을 야망은 없다. 다만 <숨은 독자 찾기>를 연재하면서 알게 된 건, 숨은 독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숨어 있는 '독자' 말이다. 문학은 헤어진 후에도 서로 사랑하게 합니다. 위화의 글이었던가. 그의 글에서 희망을 찾는다. 우리의 만남에서 한 줄기 불꽃이라도 터진다면, 놀랍고 따뜻할 것이다.
A: 계획서를 화요일까지 제출해 주세요. 주제는 '기후 위기'입니다.
나: 융합으로 진행하면 계획서 하나에 작성하면 되겠죠?
A: 네, 그렇죠. 다만 수강하는 학생 수가 좀 늘어날 순 있습니다.
나: (융합을 권장하는데, 겁도 주네?) 넵.
[수업 노트(초안)]
*운영 목적:
시적 언어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기존 정의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일상과 일상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지도한다. 문학과 영어 교과의 융합을 통해 언어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바탕으로 표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한다.
1.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자연’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적어보기
2. 메리 올리버의 시‘기러기’ 원문에 나타난 시적 표현, 영어표현, 신화 이야기 등 배우기
3. 기존 사전시 예시를 참고하여, 자연을 소재로 한 나만의 영어 사전시 만들기
4. 패들릿으로 친구들과 공유: 공감 댓글, 사전시에 쓴 내용에 관한 이야기와 다른 친구들의 시에서 궁금한 점 나누기
시 워크숍에서 친구들과 읽고 쓰고 나누면서 우리는 물었었다. '그래서... 시가 도대체 뭔데?' 산문의 언어와는 분명 다른 시적 언어의 특성만 알려줄 수 있어도 아주 좋은 경험일 것이다. 시의 형식보다 더 초점을 둔 건 '시인의 눈'으로 보는 것. 나는 우리가 그걸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숨은 독자들이 모습을 자주 드러낼수록 우린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 테니까.
12화를 마지막으로 <숨은 독자 찾기>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