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만나서 스스로 변화하는 경험을 직접 가져 본 사람만이 같은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9
<숨은 독자 찾기> 연재를 시작한 것은 평소 수업에서 실천해 온 문학 교육에 대한 성찰을 정리해 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선 걸까, 그래서 국어 교사도 상담 교사도 아닌 나는 무얼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까 등등에 대해서.
최근에 연재의 방향을 좀 더 뚜렷하게 만들어줄 계기를 만났다. 지난주부터 시 워크숍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타로술을 배우게 된 것.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책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를 읽고부터다. 그동안 매거진이나 브런치북으로 발행해 온 글들이 이 책의 내용과 아주 많이 닮아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움직였다. 마음이 통하는 스승이나 동료를 만난 느낌이랄까. 비블리오테라피(국내에선 '독서 치료'로 불린다)에서 문학 치료를 넘어 문학 상담에 이르는 이야기.
독서치료는 "독자의 인성과 문학 작품 사이에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상호과정이며, 인성을 측정하고 적응하며 성장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심리학 분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니콜라스 마자, <시 치료 이론과 실제>, 31쪽 재 인용) 67
상담에 활용되는 텍스트는 상담자가 내담자 A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담자 B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담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직면하는 과정에서 안전감을 느끼게 도왔다. 텍스트의 내용에 대해 말하고 쓰는 동안 우리는 자기만의 언어로 객관화된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문학 상담에서 텍스트 읽기만큼 중요한 건 글쓰기였다. 시의 문형을 빌려 자신의 시로 바꾼다든지 푼크툼(punctum) 즉, 유달리 각별한 호소력을 갖는 요소들을 시어들이나 시구들에서 찾는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몰랐던 것들도 쓸 수 있고 모르는 것도 쓸 수 있다. 글을 쓰면서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고 쓰면서 모르는 것들을 창조해 내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문학상담의 쓰기에서 안전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이런 쓰기가 자기에 대한 통념적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자기와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인 언어 사용에서 벗어나 문학적 언어로 자기, 사건, 세계를 표현하는 순간, 다른 자기, 다른 사건, 다른 세계가 도래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88
혹자는 문학의 치유적 기능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면 문학가들의 우울증과 자살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문학 상담은 내적 독백과 분출을 넘어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공유를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다. 함께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 상담에서 텍스트는 정답이나 진리를 알려주는 지혜서가 아니다. 문학 상담은 내담자의 숨은 참 자기를 '발견'하기보다 미결정적 잠재성을 실현하도록 돕는 과정인 셈이다. 상담자는 개인적 근심거리를 1:1로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문학 살롱의 주인장 정도일 것이다.
어떤 회차에서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경우에는 두 가지 활동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피드백(feedback)'과 '셰어링(sharing)'입니다. 피드백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은 뒤, 그 글에 대한 느낌을 글쓴이에게 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셰어링은 그 글과 관련되어 떠오르는 자기 경험이나 생각을 함께 나누는 활동을 말합니다. 116
마지막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미적 활동에서 연대의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대목. 우리가 따로 또 같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다면.
이미 주어진 법이나 관념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은 사실 주어진 전제들을 수용하는 것 외에는 어떤 가능성도 없다고 믿는 무력감에서 비롯됩니다. 문학상담자와 예술가 교사가 수행하는 미적 교육은 자발적 활동의 기쁨을 통해서 무력감을 제거하는 것을 첫 번째 활동 목표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 활동은 본질적으로 타자 지향적입니다. 미적 활동의 기쁨은 대상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대상 주변에 모여든 이들 사이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공통감각을 찾아내는 데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52
*인용 출처: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